황인찬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이 시에는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시는 우리가 그 여름의 바다에서 돌아온 뒤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불러일으킨 작은 변화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느 토요일 오후 책장에 올려둔 소라 껍데기에 귀를 대며 거기서
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부러 확인한다거나, 한 손에 국자와
젓가락을 쥔 채 개수대로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갑자기 떠오른
지난여름의 대화들에 혼잣말로 답해본다거나,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들
어느 주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까맣게 탄 그와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의 손에 아름다운 것이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그가 이상하다는 듯한 펴표정으로 물었을 때는 어째서인지 그것을 설명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답하는 대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던
돌이켜보면 아마 그는 우리가 결국 이 시의 마지막에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에는 늦도록 잠들지 않았다
즐거웠던 지난 일들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폭죽 불꽃이 터져 오르는 해변에서 불을 피우며 여럿이 어울려 춤을 추었던
그 밤과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태풍이 찾아와 살풍경한 해변을 웃으
며 걸었던 일 따위에 대해 아주 짦았고 그래서 충실했던 날들에 대해
손을 잡은 채로,
손에 매달린 아름다운 것을 서로 모르는 척 하며
그렇게 그 장면은 끝난다
이제 이 시는 바다를 떠 올린다거나, 바다에서 있었던 일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그 생활 따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여름과 그 바다가 완전히 끝나버렸는데도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것이고,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 들에 대한 것이고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기
쁨과 부끄러움에 대한 것일 뿐
그렇게 삶이 계속 되었다
'문학과 사회' 2016. 여름호
" 그 여름의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 그 여름의 바다'는 현재가 아닌 지난 시간이기에 과거의 현장인 바다보다는 그 바다에서 돌아 온 뒤 일어난
일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불러 일으킨 작고 사소한 변화들...
일부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우리의 일상들은 ' 작고'' 소소한' 삶의 반복이다.
지난 여름의 그 바다는 완전히 끝나 버렸는데도 ' 아무것도 끝난 것은 없다는 것'
' 소박한 기쁨과 부끄러움이 있지만 ''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들' '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것'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 항상성'' 일관성' '안정성'은 무료하게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 여행이나, 휴가는 특정한 날의 특정한 사건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조금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원인은 ' 사랑' 이나 ' 조금은 특별하게 보낸 시간(추억)'에 기인하겠지만 꼭 '사랑'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을 터
그 날의 일로 인해 '나의 삶'이 쬐끔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
대다수 凡人들의 삶이 인류사나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가져오기란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한 개인 역시 '소 우주' 이므로 작지만 작지않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한 인간의 생애는 채워져 간다
무슨 커다란 담론도 아니고, 사상의 전환도 아니며, 그저 ' 사랑'이거나 ' 행복한 시간의 기억'일 뿐인데
삶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다시, 사랑 혹은 삶 ". 문학평론가 권경아님 해설에 제 생각도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사진: 멕시코 유카탄 반도 '툴룸'
카리브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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