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유종인 아껴 먹는 슬픔, 장철문 매화

생게사부르 2018. 1. 9. 00:31

유종인


아껴 먹는 슬픔


재래식 화장실 갈 때마다
짧게 뜯어가던 두루말이 화장지들
내 밑바닥 죄를 닦던 낡은 성경책이 아닐까
떠 올린적이 있다

말씀이 지워진 부드럽고 하얀 성경책의 화장지!
외경(畏敬)의 문 밖에서 누군가 나를
노크할 때마다 나는
아직 罪를 배설중입니다 다시
문을 두드려주곤 하였다

바닥난 화장지, 어느날 변기에 앉아
내 죄가 바닥나 버린 허탈에 설사라도 나는
기분에 울먹인 적이 있다

그러나, 천천히 울어야지
저 문 밖의 가을, 깃동잠자리 날개 무늬를 살필 수 있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리에 토란잎을 쓰고 가는 아이처럼
슬픔에 비 맞아 가는 것도
다 구경인 세상이듯이

때론 맨발에 질퍽이는 하늘을 적시며

 

 

 

장철문


매화


변기가 밥그릇처럼 거들먹하다
사흘만에 푸짐하다

먹는 일보다
누는 일

아버지의 치켜든 밑을 닦으며
손가락을 오그린다

똥을 누는 일과
묻히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오그리는 일

내가 바라보고 온 모든 것이
추상적이었다

더 접을 수 없는 휴지를 던지고
새 것을 접는다



*      *      *

 

 

왕조시대에는 왕의 큰 볼일을 '매화'라 하여 내의원에 보내 왕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기도 하였지만
'똥'에 대한 얘기, 참으로 인간의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얘기입니다.

대학시절까지 남자들이 여자들 놀린다고, 식사 중에 밥을 앞에 놓고, 유독 '똥' 얘기를 끄집어 내곤하는

측들이 있었는데 그런 놀림에 놀아나기 싫어서 태연한 척 받아넘겼지만 속으로는 무지 싫었습니다.

그러나 길거리 지나다가 '개똥'이라도 볼라치면 얼굴 찌푸리고 코를 싸매던 아가씨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밥을 먹다가도 일어나 아이 똥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우게 됩니다.

아무리 효자,효부라도 자식에게 관대하고 희생적인 것 만큼 부모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제 친정 부모님들께서는 제가 제대로 철도 들기 전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나이드신 모습을 알지 못하거니와

효도할 기회조차 없었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앞 세대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으니 그 과정 중 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계시는 분

대소변 받아내는 일,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이리저리 돌려 누이는 일, 요령껏 침대위에서 목욕 시키는 일

등을 흔하게 목도했습니다.

 

중증 장애인들은 나이에 상관 없이 입으로 떠 먹이는 음식의 반이 흘러 내리기도 하고

코로 입으로 호스 꽂아 영양제를 투여하는 일, 오랜 기간 식물처럼 누워 있는 사람 목에 호스를 넣어

가래를 빼 내는 일등 숱한 형태의 목숨을 보았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제 가고 싶은 곳 제발로 걸어갈 수 있고

제 손으로 음식 입으로 가져갈 수 있으며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잘 다니고 시원하게 볼 일 보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매화틀 사진을 찾다가 수원에 ' 해우재(소) 박물관이 '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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