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경
장화 신은 여자들
새벽 5시면 출근하는 종합병원 급식소 여자들은 장화를 신는다.
커다란 강철 솥이 쿵쾅대고, 노란 카레물이 용암처럼 끓어 순식간에 설거
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곳,
발에 물을 적게 묻히려면 장화가 필수품인 그 곳에서 집에서 살림만 살던 여
자 한명이 입소했다.
설거지 코너에서 하루를 견딘 여자는 화장실에 앞치마와 장화를 벗어놓고
사라졌다.
장화를 신는 무서운 곳에서 일을 못하겠다고 했단다. 25년 장화 신고 일한
큰 언니가 식판을 닦아 던지면서 하는 한마디
" 씨발년, 그라모 집구석에서 가랑이나 벌리고 누웠지. 머하러 와서 염장을
지르고 가노"
숫돌에 벼르던 칼날을 손가락에 대어보는 둘째 언니, 광기 두른 칼이 얌전
히 칼집 소독기로 들어간다.
이내 코를 고는 칼날이 쉭쉭 숨소리를 내뿜는다.
노름꾼 주정뱅이 남편과 살면서 자식 넷 키운 여자
퍼들퍼들 살아 있는 엄마 욕이 듣고싶다.
오전 10시, 전쟁하러 가자는 큰언니 호령에
잠시 눕힌 땀벌창 몸 일으켜 세워
터벅터벅 몰고가는 장화 신은 여자들
2016. 7. 화요문학회가 만난 시인(복효근)
행사 책자에 실린 시임
2006.근로자 문학제 문학상 수상
2009.불교문예 하반기 신인상
진주문인협회
* * *
시의 화자처럼 ' 온 몸을 던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머리쓰면서 입으로 떠들며 너무 쉽게 살아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되면서
이런분들에게는 늘 인생을 빚지고 산 기분입니다.
' 병원 급식소'가 시인의 일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도 영양사가 있고 조리원들이 있었습니다.
한때 16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있던 곳에 근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급식도 2부제로 해서 두 학년은 밥 먹고 있고,
한 학년은 수업을 하고 있고 그랬는데... 밥 냄새가 올라와서 그 수업시간 학생이나 교사나 참 힘들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 게, 손 씻고 입만 들고 가면 밥을 먹을수 있다는 거 였지요.
교사들은 점심시간마저도 학생들 지도를 해야하기에 식사시간이 영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순번을 정해 교대로 '급식지도 교사'가 있어 아이들 줄 세우고 새치기 막고 앉을 자리 배정하는 등
봉사를 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한 어떤 것도 다 업무의 연장이어서...
그야 말로 밥 쏱에서 김이 ' 쉭쉭' 안개처럼 올라오고 있고, 카레가 용암처럼 분출하면서 끓고 있기도 했지요.
산처럼 설겆이 그릇이 쌓이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고요
상추쌈이 나올 때면 '이 상추 가져오느라 밭뙈기 하나는 작살났겠다' 싶기도 하고요
저는 제 혼자 끼니를 해결하거나 두식구 많아야 셋 먹는 음식 하루에 한끼 정도 준비하면서도
음식준비 힘들어 하는 편이라...
늘 식사를 제공하는 분들에게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지경 시인의 이 시를 작년에 읽고 ' 짜안하면서 용감한 여전사'를 보는 듯 했습니다.
' 김치녀'니 ' 성형녀'니 해서 부정적 이미지의 여성들도 많지만
또 한편에서는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 아래서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온몸으로 부딪치며
진하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하고 용감한 저력있는 여성들,
통칭 ' 장화를 신고 일하는 여성들'은 온 몸으로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산물 트럭을 몰고 다니고, 어판장에서 경매 받은 생선을 담아 싣고 떠나고
농촌 하우스에서 엎드려 고추 모종이나 딸기를 심고 수확하고...
이 시를 찾아 올려야겠다는 계기는 전혀 다르긴 합니다.
앞 주 눈비 오는 날, 아침 운동하러 가서 요즘 패션 아이템으로 나오는 예쁜 주황색 장화를 신고 온
회원이 있었습니다.
우리 강사님과 미모를 겨룰 정도로 날씬하고 세련된 젊은 회원이 신고 온 신발이었는데
'장화'를 보는 순간 문득 이 시를 찾아 올려야겠다는 생각...
'장화'는 신발일 뿐이어서 필요에 따라 사 신으면 됩니다.
특히 여름 비 올 때 유용하지요.
물이 스며드는 운동화는 발이 차기도 하고 가죽용 소재 구두도 물에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맨발로 샌들을 신으면 수시로 발을 닦아야하고 ... 그럴 때 장화를 신어야 하는데
습기차면 무덥고...
완벽한 사람 없듯 완벽한 물건도 없습니다만
여러가지 패션이나 여러가지 용도의 장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균이라 광고하는 위생용 장화, 부츠처럼 안에 털이 든 방한 장화, 말 그대로 패션장화
용어도 레인 부츠...
취미생활을 위한 장화까지 있으니 생업을 위한 분들을 위한 장화의 기능이 향상되어 그분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덜 고달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