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천지경 장화 신은 여자들

생게사부르 2018. 1. 22. 13:15

천지경


 

장화 신은 여자들


새벽 5시면 출근하는 종합병원 급식소 여자들은 장화를 신는다.
커다란 강철 솥이 쿵쾅대고, 노란 카레물이 용암처럼 끓어 순식간에 설거

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곳,

발에 물을 적게 묻히려면 장화가 필수품인 그 곳에서 집에서 살림만 살던 여

자 한명이 입소했다.

설거지 코너에서 하루를 견딘 여자는 화장실에 앞치마와 장화를 벗어놓고

사라졌다.

장화를 신는 무서운 곳에서 일을 못하겠다고 했단다. 25년 장화 신고 일한

큰 언니가 식판을 닦아 던지면서 하는 한마디

" 씨발년, 그라모 집구석에서 가랑이나 벌리고 누웠지. 머하러 와서 염장을

지르고 가노"

숫돌에 벼르던 칼날을 손가락에 대어보는 둘째 언니, 광기 두른 칼이 얌전

칼집 소독기로 들어간다.

이내 코를 고는 칼날이 쉭숨소리를 내뿜는다.

 

노름꾼 주정뱅이 남편과 살면서 자식 넷 키운 여자

퍼들퍼들 살아 있는 엄마 욕이 듣고싶다.

오전 10시, 전쟁하러 가자는 큰언니 호령에

잠시 눕힌 땀벌창 몸 일으켜 세워

터벅터벅 몰고가는 장화 신은 여자들

 

 

 

 

2016. 7. 화요문학회가 만난 시인(복효근)

             행사 책자에 실린 시임

 

 

2006.근로자 문학제 문학상 수상

2009.불교문예 하반기 신인상

진주문인협회

 

 

 

*      *      *

 

 

시의 화자처럼 ' 온 몸을 던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머리쓰면서 입으로 떠들며 너무 쉽게 살아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되면서

이런분들에게는 늘 인생을 빚지고 산 기분입니다.

 

' 병원 급식소'가 시인의 일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도 영양사가 있고 조리원들이 있었습니다.

한때 16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있던 곳에 근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급식도 2부제로 해서 두 학년은 밥 먹고 있고,

한 학년은 수업을 하고 있고 그랬는데... 밥 냄새가 올라와서 그 수업시간 학생이나 교사나 참 힘들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 게, 손 씻고 입만 들고 가면 밥을 먹을수 있다는 거 였지요.

 

교사들은 점심시간마저도 학생들 지도를 해야하기에 식사시간이 영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순번을 정해 교대로 '급식지도 교사'가 있어 아이들 줄 세우고 새치기 막고 앉을 자리 배정하는 등

봉사를 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한 어떤 것도 다 업무의 연장이어서...

 

그야 말로 밥 쏱에서 김이 ' 쉭쉭' 안개처럼 올라오고 있고, 카레가 용암처럼 분출하면서 끓고 있기도 했지요.

산처럼 설겆이 그릇이 쌓이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고요

상추쌈이 나올 때면 '이 상추 가져오느라 밭뙈기 하나는 작살났겠다' 싶기도 하고요

 

저는 제 혼자 끼니를 해결하거나 두식구 많아야 셋 먹는 음식 하루에 한끼 정도 준비하면서도

음식준비 힘들어 하는 편이라...

늘 식사를 제공하는 분들에게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지경 시인의 이 시를 작년에 읽고 ' 짜안하면서 용감한 여전사'를 보는 듯 했습니다.

 

' 김치녀'니 ' 성형녀'니 해서 부정적 이미지의 여성들도 많지만

또 한편에서는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 아래서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온몸으로 부딪치며

진하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하고 용감한 저력있는 여성들,

 

통칭 ' 장화를 신고 일하는 여성들'은 온 몸으로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산물 트럭을 몰고 다니고, 어판장에서 경매 받은 생선을 담아 싣고 떠나고

농촌 하우스에서 엎드려 고추 모종이나 딸기를 심고 수확하고...

 

이 시를 찾아 올려야겠다는 계기는 전혀 다르긴 합니다.

앞 주 눈비 오는 날, 아침 운동하러 가서 요즘 패션 아이템으로 나오는 예쁜 주황색 장화를 신고 온

회원이 있었습니다.

우리 강사님과 미모를 겨룰 정도로 날씬하고 세련된 젊은 회원이 신고 온 신발이었는데

'장화'를 보는 순간 문득 이 시를 찾아 올려야겠다는 생각...

 

'장화'는 신발일 뿐이어서 필요에 따라 사 신으면 됩니다.

 

특히 여름 비 올 때 유용하지요.

물이 스며드는 운동화는 발이 차기도 하고 가죽용 소재 구두도 물에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맨발로 샌들을 신으면 수시로 발을 닦아야하고 ... 그럴 때 장화를 신어야 하는데

습기차면 무덥고...

 

완벽한 사람 없듯 완벽한 물건도 없습니다만

 

여러가지 패션이나 여러가지 용도의 장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균이라 광고하는 위생용 장화, 부츠처럼 안에 털이 든 방한 장화, 말 그대로 패션장화

용어도 레인 부츠...

 

취미생활을 위한 장화까지 있으니 생업을 위한 분들을 위한 장화의 기능이 향상되어 그분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덜 고달펐으면 합니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원 뜻밖의 지구  (0) 2018.01.26
이원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0) 2018.01.26
이원 애플 스토어  (0) 2018.01.18
이원 하루  (0) 2018.01.16
정선희 6개월은  (0) 201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