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빌어먹을 동백꽃

생게사부르 2018. 1. 20. 17:04

유홍준


 

빌어먹을 동백꽃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위층 사는 백수가 동
백이파리 같은 피크를 쥐고 뚱땅뚱땅 기타줄을 퉁길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막 이혼한 여자가 옷 가
지를 챙겨 덜덜덜덜 가방을 끌고 지나갈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209동 경비 아저씨 졸음이 무겁고
도 무거운 머리통을 떨어뜨릴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끼이익, 어디선가 다급하게 브레이크 밟는 소
리 들릴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아날로그
시곗바늘 세 개가 잠시 정오에 모였다가 째까닥 떨어질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앞치마 두른 내 여자가
분리 수거통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 부을 때 동백
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지랄하고도 허리가 부러졌나,
하루종일 드러누워 지내는 니트족 내 아들놈이 리모컨을
돌릴 때 떨어집니다 채널이 바뀔 때마다 떨어집니다 화
면이 바뀔 때마다 떨어집니다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
집니다 에라 이 빌어먹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는 웃는다>

 

 

 

*      *      *

 

 

지난 주 진해 명동쪽에서 식사 모임이 있었는데 도로변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나무에 동백 붉은 봉오리들이

제법 많이 보여서 이제 동백은 겨울의 꽃이라 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매화나 복수초도 핀다는 얘기가 나오니...한 겨울은 물러 간 건가요? 에이! 설마요.

 

남쪽이라 한 낮에 간혹 겨울답잖은 날씨로 기온이 올라가기도 하니

꽃도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듯...사람으로 치면 호르몬이나 대사 불균형쯤 되나 봅니다.

 

아직 1월이고 음력으로는 12월이니...몇번의 추위가 남았을 테지요.

 

모처럼 싸부 시 한편 올려 봅니다.

' 에라 이 빌어먹을 동백꽃'이랍니다...'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저 개인으로는 한 겨울에 푸른 잎 사이 간간이 붉은 꽃망울 보게 해 줘서 좋고

이전 기혼부인들 쪽찐 머리에서 윤기 자르르 흐르던 동백기름 생각나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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