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박소유 원탁회의

원탁회의 /박소유 동그란 결론을 내자는 뜻이지요 한 명이라도 딴소리하면 옆으로 새는 혓바닥처럼 일그러지는 둥근 탁자 맞은 편에 앉은 저 사람은 사랑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같군요 중요한 건 정색을 하고 앉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는 왜 이렇게 시시껄렁해질까요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동그라미를 치고 밑줄을 긋고 리듬도 없이 시간은 흘러가네요 이토록 많은 말이 필요한 건지 입을 다물면 금방 큰일 날 것처럼 한마디 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들 입을 맞추자는 것이지요 오! 오!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만 내밀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있겠네요 우리는 금방 헤어질 사람들인데 금방 다시 만날 사람처럼 왜 이렇게 다정해 지려고 하는 걸까요 * * * 원탁회의든 사각회의든 ' 우리는 금방 헤어질 사람들인데 금방 다시 만날 ..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이수명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나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