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달 이영광

생게사부르 2018. 9. 22. 14:17

달 

                                  이영광


아버지, 속 아프고 어지러운데 소주 마셨다. 마셔도 아
프다 하면서 마셨다. 한 해에 한 사흘, 마셔도 많이 아프면
소주병 문밖에 찔끔 내놓았다. 아버지 쏟고 싶은 건 다 쏟
고 살았다. 망치고 싶지 않은 것 다 망치고 살았다. 그러다
하루 소주 한 됫병으로 천천히, 자진했다. 조용한 아버지
가 좋다 죽은 아버지가 좋다. 아, 그러나 텅 빈 지구에 돌
아온 달처럼 덩그라니 앉았노라니, 살았던 아버지가 좋다.
시끄럽게 부서지던 집이 좋다. 아버지 평생 농사 헛지었다.
나는 어둠이 좋아 허공을 갈고 다녔다. 달 하나로 살았다.
문득문득 겨울 들판처럼, 글자를 다 잊어버린 지구의 어
머니가 있다. 공구 같은 손이 또 시집 그 거칠고 어지러운
것을 , 고와라 고와라 쓰다듬는다. 점자를 읽듯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호두나무 가지에 찔려 오도 가도 못하는, 뚱
그런 보름달 헛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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