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46

선인장 유홍준

선인장/ 유홍준 푸른 가시가 박힌다 외로움이 목을 뽑고 눈썹을 밀어올린다 가시눈물은 사막을 적실 수 없다 눈물은 사막의 달이 다 핥는다 砂邱위에서 불어내는 휘파람 늙은 낙타의 귀를 채 운다 손끝까지 가시가 뻗친다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다 모래만 몇 줌 쥐었다 놓았다 또 누가 사막에 들어서나 가시 박힌 눈동자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할미꽃 유홍준

할미꽃/ 유홍준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즐겨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곱 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 됐다 할머니 무덤가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마루 바라보며 생각해 보는 봄날의 안감은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 봄날의, 이 무덤의 안감은 또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이냐

유홍준 신발 베고 자는 사람

신발 베고 자는 사람 / 유홍준 아직 짓고 있는 집이다 신축공사현장이다 점심 먹고 돌아 온 인부들 제각각 흩어져 낮잠 잘 준비를 한 다 누구는 스티로폼을 깔고 누구는 합판을 깔고 누구는 맨바 닥에 누워 짧고 달콤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갈 준비를 한다 신발 포개 베고 자는 사람은 신발 냄새를 맡는다 옷을 둘둘 말아 베고 자는 사람은 웃옷 냄새를 맡는다 딱딱한 각목 동가리를 베고 자는 사람은 딱딱한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찌그러지든 말든 상관 없는 신발 두짝을 포개 베고 자는 사람은 생각한다 버려야할 것과 새로 사야할 것들 이제는 다 옛일이 되어버 린 것들을 생각한다 (사실은 아무 생각도 안한다) 아직 문짝이 끼워지지 않은 집은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것은 막히지 않았다는 거다 세상 모든 집은 완공되기 전에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