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없이/유홍준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 시집 창비. 2006. * * * 한겨울이다. 많은 것들이 입을 닫고 있다. 고라니도 입을 닫고 다람쥐도 입을 닫고 있다. 붕어도 잉어도 입을 닫고 있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만 입을 열었다 닫을 뿐. 대다수의 것들이 다 침묵을 하고 있다. 나 사는 마을 뒷산 굴참나무도 그렇고 산벚나무도 그렇다. 겨우내 입을 닫고 있다가 봄이 오면 오만 것들이 다 펑펑 꽃을 피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