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천령

생게사부르 2018. 5. 25. 13:13

유홍준


 

천령


 

개오동 꽃이 피었다
죽기 살기로 꽃을 피워도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꽃이 피어 있었다
천령 고개 아래 노인은 그 나무 아래 누런 소를
매어 놓고 있었다
일평생 매여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안 태어나도 될 걸 태어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육손이가 살고 있었다
언청이가 살고 있었다
그 고개 밑에 불구를 자식으로 둔 애비 에미가
살고 있었다
그 자식한테 두둘겨 맞으며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개오동 꽃이
그 고개 아래
안 피어도 될 걸 피어 있었다

 

 

*      *      *

 

 

' 천령' 이름을 일상으로 접한 건 함양에서였네요.

' 천령 물레방아 축제' ' 천령 유치원' ' 천령 포크밸리'...함양의 옛지명입니다.

원래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있던 곳이라 호감이 있었지만 지명에 ' 靈'자가 들어서 왠지 좋았습니다

 

詩에서는  ' 천령' 고개아래라 했습니다만...

 

식물에 '개~' 자가 붙는 게 의외로 많았습니다.

비슷비슷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도 어려울 듯 했고요

' 진짜' 가 아닌 ' 가짜' '비슷한 무리'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 같은 데...별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간이 그렇게 나눴을 뿐이지 하찮아 보여도 나름 다 소중하게 존재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개오동나무는 판자로 켜면 아름다운 무늬가 있고 또한 습기에 견디는 성질이 강하여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 데 쓰이며 관을 만드는데도 쓰인다고 합니다. 한 아름이 훨씬 넘게 자랄 수 있는 큰 나무로

넓은 잎은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어 정원수로 사랑을 받으며 벼락을 피할 수 있는 나무라 큰 건물 옆에

심는다고도 하니 ' 개~' 붙은 이름치고 쓸모가 많네요.

 

 

*       *       *

 

 

멀쩡한 사람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둔 부모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그럼에도

'안 태어 나도 될 걸 태어 난 사람'

'안 피어도 될 걸 피어서...'

 

안타까우니 그렇게 말하지만 이 세상에 안 태어 나도 될 사람은 없고, 안 피어서 될 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님들 말마따나 이 세상 올때 발가벗은 빈 몸으로 왔다가 '가사장삼' 한 벌 얻어 입었으니

得이라 ...

 

신체장애는 본인으로서는 불편한 게 사실이겠지만 사지 멀쩡한 채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도 많은 뿐더러 후자일 경우

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누구도 당사자가 아니면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 죽지 못 해 산다는 사람' 보다 ' 그래도 살아봐서 좋았다' 고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꽃 다운 나이(18)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몸이 부서지다시피 해서

평생 설흔번 이상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여파로 평생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지요.

출산을 해 보지 못하여 ' 아기'에 대한 욕구와 애정이 그녀의 그림 군데군데 반영이 되어 있기도 하고요.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들이 있지만 ' 남편의 둥그런 배'를 좋아했고,

아기처럼 목욕시키기를 좋아했다는 얘기에 좀 울컥하더군요.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국민화가이고 ' 삶에 대한 의지의 화신'이며 ' 강인한 여성상' 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대다수는 그녀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 되겠지만... 그래도 ' 살아봐서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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