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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는 기호의 모습/강재남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강재남 우는 법을 잘못 배웠구나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근심이고 환절기는 한꺼번에 와서 낯설었다 오후를 지 나는 구름이 낡은 꽃등에 앉는다 매일 같은 말을 하는 그는 옹색한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서다 눈시울 붉히는 꽃은 비극을 좀 아는 눈치다 비통한 주름이 미간에 잡힌다 구름의 걸 음을 가늠하는 것만큼 알 수 없는 꽃의 속내, 연한 심장을 가진 꽃은 병들기 좋은 체질을 가졌다 그러므로 생의 어느 간절함에서 얼굴하나 버리면 다음 생에도 붉을 것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계절에는 풍경이 먼저 쏟아졌다 헐거운 얼굴이 간단 없이 헐린다 낭만을 허비한 구름은 말귀가 어둡다 색을 다한 그가 급하게 손을 내민다 구름이 무덤으로 눕기 전에 꽃은 더 간절해져야 함으로 울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친절..

핑크뮬리/ 김희준

핑크뮬리/ 김희준 거미는 노을을 빨아 먹고 실을 뿜는다 태양의 잔상으로 피는 꽃도 다를 것 없다 물의 농도에 따라 들판은 짙어가고 새의 영혼이 흔들린다 용암정 오르는 길 겉옷 하나 살뜰하지 못한 계집애를 봤다 늙은 아비와 막걸리 냄새 진동하는 방안에 빨랫줄을 걸어 놓고 산다고 했다 추운 날 늙은 아비의 빨래를 하고 손등이 터져버린 계집애는 꽃을 말려 팔았다 어느 벼랑에서 꺾었기에 고혹한 향을 내는지 꽃차 머금으며 꽃차의 내력을 마신다 저녁의 지문을 허락받은 바람이 스며들 때마다 계집애의 단발머리와 오롯이 걸린 빨랫줄을 생각한다 길을 멈춘 늙은 아비가 딸에게 바칠 꽃 한움큼 사 갔기를 억새가 엉킨 들에서 구체적인 사람이 흔들리기를 그리고 거미가 짜내는 실로 저 계집애 옷이나 한벌 입히면 좋겠다 어둠으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