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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언니/김희준

친애하는언니/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 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 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 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제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 사는 누워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 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 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 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이불과 옥상과 돌담 그리고 유채꽃과 산새와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한 때 비가 내리고, 물의 결대로 살 수 없다면 늙지 않은 그 곳으로 가자 소매 안에 훔쳤던 벚나무에..

백일홍/ 장만호

백일홍/ 장만호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 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과 작심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 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사진: 남계서원 꽃 피지 않은 배롱나무

약속된 꽃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묻는 말들/ 이원하

약속된 꽃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묻는 말들/ 이원하 지금 여기는 물밖에 없어요 물이 몇 장으로 이루어져야 바다가 되는지 수분은 알까요 오늘따라 바다가 이름처럼 광야처럼 잔잔해요 잔잔해서 결이 없으니 바다가 몇 장인지 어떻게 셀까요 이와 비슷한 어려운 일들을 어려운지 몰라주며 세다보면 순간순간이 별거 아닌 것처럼 세다보면 선배처럼 될 수 있어요? 지금 거긴 꽃밖에 없어요 책에서 읽었는데 수분의 기운만 있다면 바다를 건너 꽃밭에 갈수 있대요 선배처럼 다른 소리지만 자다가 들었는데 파도가 잔잔해지면 가슴을 쓸다가 마음이 미끄러진대요 선배를 바라다보니 밤낮이 바뀌네요 밤하늘 촘촘 박힌 별을 보고 있자니 버리자니 많이 그런 어둠이네요 이 어둠처럼 내일 낮을 살아갈 거예요 선배, 이렇게 말해본 적 있으시죠 '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