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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운곡마을 정경

함양 서하 운정리 정경 작년 운곡리 은행나무 보러 간 날 만개한 은행나무는 못 보고 다소 쓸쓸한 가을 정경을 보고 왔습니다. 폐교를 연수원으로 사용했나본데 그 마저 폐원입니다.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제한된 아파트 안에서 생활하는 도시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넓은 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땅 덩어리가 좁다좁다 하지만 이런 거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 대다수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교정의 나무들이 그 연륜을 자랑합니다 나무 사이에 길게 줄이 매여 있어요. 진돗개가 낯선이들에 대한 호기심 반, 감시 반 줄을 오가며 짖어요. 눈으로 본 유일한 관리인(견)이네요. 교사 뒷편으로 올라가다 보니 식당, 샤워실 같은 게 있었는데 이미 오래 사용하지 않은 듯 돌계단을 올라가니 숙..

거꾸로 일력/ 김예하

거꾸로 일력/ 김예하 벽에 걸린 새벽이 낱장입니다 하루를 들었다 놓았다 오늘을 달래주세요 푸른 시간들이 내일 한장, 마른 잎 두장...지우고 있습니다 카운트다운은 사절입니다 나의 시간들을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뒤편의 변수를 숭배하기로 했어요 내 손바닥 안에서 쥐락펴락한 것들, 캄캄할수록 더 명징한 한 줄기 빛이 아니라서 오늘이 끝점을 향해 점점 얇아집니다 빛도 호흡곤란이 있습니다 저 초록의 부스러기들 나를 비울 때까지, 내일의 운세는 인욕입니다 틈 사이로, 새벽이 나를 한장 떼거나 넘기는 방식으로 - 2018. 계간 ' 시현실' 신인상 * * * 또 한 장 달력을 떼어내자 들어선 12월 달랑 낱 장이 남습니다. 코로나로 시작한 유례가 없는 한 해였습니다. 올해 신입생은 제대로 입학도 못해보고 학교..

한영미 이상한 나라 앨리스, 굴레방 다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영미 라면으로 첫 끼니를 때운다 바닥엔 파지처럼 굴러다니는 쓰다만 이력서들 열정 하나로 통했던 시대는 갔다 모래 수렁을 떠도는 비문의 유령들, 오늘은 이 회사에서 내일은 저 회사에서 같은 얼굴을 만나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래바람은 깊은 수렁을 덮기도 하고 만들어내기도 한다 빠져나오려는 안간힘은 처음 몇 번의 좌절이면 족했다 움직일수록 흘러내리는 모래의 깊이는 늪처럼 빠져들고, 바닥처럼 측량되지 않는다 입구가 사라지는가 하면 출구가 봉합되기도 한다 수렁이 무덤이 되는 것은 한순간, 어제도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왔다 가수와 진수가 구별되지 않는 교묘함에도 구덩이를 채운 숫자는 갈수록 넘쳐난다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쌓여가는 빈 소주병이 발굴된 유물의 전부가 될 것이다 전화 한 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