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 박은형 박꽃 / 박은형 석양에 발이 빠져 통성명만 겨우 하고 다시 저녁을 허문다. 마중과 배웅의 표지판처럼 며칠 째 박꽃, 퍼뜨리고 싶어서 흰, 아무도 현혹할 수 없게 낡아서 흰, 몰래 설화처럼 피었다 져서 흰, 들키라고 아니 들키지 말라고, 아니 될대로 되라고 문틈에 끼워 놓은 쪽지라서 흰, 한 송이로 무성해서 흰, 정말이지 꽉 들어차 자꾸 쏠리는 눈자위라서 흰, 당신에게 꼭 어울려서 흰,흰,흰 당신이라는 단 한번의 양식樣式 시로 여는 일상 2020.12.06
앵두의 폐사지/ 박은형 앵두의 폐사지/ 박은형 꽃지는 길을 따라가다가 보게 되었네 깊은 흙잠에 들었다 깨어났다는 절집이었네 한 시절 영화는 계단석 돌꽃으로 다시 피고 있었네 석등 연화를 받들고 쌍사자 두분 다정해지셨네 무릎걸음의 희붐한 고요가 영영 한참이었네 오월의 옛집 마냥 심정 푸르른 폐허였네 다 울지 못한 울음, 물앵두 한 그루로 접혀 있었네 오래 욱여 둔 몸의 소용돌이 찬란하게 떨구고 있었네 젖은 신을 끌며 돌아오다 마주친 석양 같은 것 붉게 웅크리다 뛰어내린 호젓한 이름 같은 것 절터는 매듭 없는 풍경을 흠씬 벗어 놓았네 폐허의 숨결들은 달콤한 귀 하나면 봄날이었네 뭉텅뭉텅 마음져 버리기 좋은 봄날이 바람불고 있었네 * * * 시는 봄날이라는데 스산한 풍경이네요 폐사지는 탄생보다는 소멸쪽이라 특별한 계절 감각없이 폐라.. 시로 여는 일상 202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