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물/ 김필아 누군가 소녀로 꽃물을 들였지 동여맨 끝이 예쁠거라며 잠이 들었어 아침에 일어나면 봉숭아들이 땅 속으로 스미는 서녘의 얼룩을 남기곤 했지 그날도 봉숭아는 피를 토하고 있었지 들숨날숨 긷는 소리에 톡톡 터지기도 했지 손목에 찬 초침도 없는 방수시계는 잘도 돌아갔지 기분과는 상관 없이 재깍재깍 돌아갔지 나는 겉돌았지 나는 시간을 빌리려 꽃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같았지 재깍거리는 소리가 몸을 삼켜버릴 것 같았지 시계는 점점 몸이 거대해졌지 거대한 톱니바퀴가 꿈을 야금야금 깎아 먹는 것 같았지 나는 힘껏 부서져라 시계를 꽃 속으로 던졌지 불량한 계집애가 톡, 누군가 소녀로 꽃물을 들였지 나를 쿡쿡, 찧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