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베트남

베트남 후에 민망 왕릉 모습

생게사부르 2019. 8. 25. 19:44


베트남 후에(HUE) 민망 왕릉

 

 

 

베트남 마지막 왕조는 응우옌 (1802-1945) 입니다.

그 왕조의 오랜 수도가 후에였는데요. 다낭에서 버스로 2시간 반 정도가 떨어져 있습니다

왕능 총 7개가 대부분 흐엉강변에 밀집해 있다는군요

 

그 중 2대 민망황제(1791-1841 재위1820-1840), 4대 뜨득황제(1848-1883),

12대 카이딘 황제(1916-1925) 능 중 한 두군데를 보게 되는데 우리는 민망황제와 카이딘 왕릉을 봤습니다  

 

아시아권 전체가 알게 모르게, 크든 작든 중국영향을 받았지요. 베트남 역시 그러합니다

중국 문화적 영향과 열대적 자연환경, 인접한 태국영향, 사상적으로는 불교 유교 영향도 있겠지요.

 

그러다가 근대 선교사 박해로 프랑스 침입을 받았고, 2차세계대전 때 인도차이나 반도로 침략해 들어갔던 일본

  영향도 일부 있고요.

 

침과 오랜 남북 내전으로 폐허화 된 곳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가는 곳 마다 복구하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키 작고 덩치도 작은 현지 가이드 아가씨가 미리 우의를 사 들고 들어갑니다

불 필요하게 가이드 고생시킨다는 분도 있었지만 어제의 경험으로 저도 우산을 빼들고 갔습니다.

가이드가 들고 있는 우의 이곳 민망릉을 다 돌아보기 보기 전에 사용하게 됩니다

 

들어가는 입구문인데 대부분 오래된 채로 아직 손질하기 전입니다

 

 

 

 

 

문, 무인상이 늘어 서 있는데 당시 키가 작았답니다. 147- 150cm 남짓...이전 사람들은 영양상태가 부실하고

노동력 착취로 키도 작고 수명도 짧았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 얘기 나오는 거 좀 과장 일수 있지만 존재 했던 나라 얘기일듯요

 

 

 


이 왕릉의 주인공은 민망황제(재위 1820-1840)입니다

 중국과 평등하다는 의미로 국호를 대남大南으로 바꾸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환관제도를 폐지하고

군사제도를 정비하는 등 업적이 있는데

대원군처럼 서구국가와의 문호개방을 반대하는 쇄국정책을 시행합니다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하고 기독교 신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 침략을 받게되지요

 

 

 

 

부인이 500명에 자식이 150명 정도 되었다네요

중국도 왕후가 그 정도는 아닌데... 베트남 성씨마다 왕후나 후궁 없는 집이 없었겠어요.

베트남에 귀빈들 오면 민망주를 선물한다고 하는데 어느나라나 정력 어쩌고 하면  호기심 이는 게 건 공통인 듯

하긴 부인 500을 거느렸다는데야...

 

 

 

유품(물)관이 있고, 사당이 있고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왕의 공덕비가 서 있는데 핀트가 안 맞고 흐리네요.

카이딘 왕릉에서는 비가 와서 제대로 못 찍고... 공덕비가 서 있구나 하고 패스

 

 

 

 

 

 

몇 차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보면 명루(민라우)가 나와요

 

 

 

 

명루를 내려서면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이 보이고요.

 

왕궁 주위의 연못은 해자로 적의 침공이나 역모 같이 왕권을 위협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왕릉 주변의 연못은 귀신이 물을 건너지 못해서 악귀가 드나들지 않게 한다네요

 

요즘 왕들의 영면을 방해하는 악귀는 넘쳐나는 관광객이 아닐지 ㅠ...

 

 

 

 

 

 

 

 

총명정직이라 적혀 있네요. 중앙에 보이는 문 너머 무덤이 조성되어 있겠지요. 닫혀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되돌아 가는데.... 또 갑자기 소나기가...

가이드가 우비 들고 온 게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어요.

 

 

 

'해외 여행 > 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이안 바나 힐 1.  (0) 2019.09.19
후에 카이딘 왕릉, 티엔무 사원  (0) 2019.09.05
비엣남 호이안 풍경  (0) 2019.08.24
베트남 다낭  (0) 2019.08.21
베트남 다낭 풍경  (0) 201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