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튜닝 최문자 튜닝 그 무엇이 없어지지 않는 병에 걸렸다 튜닝이 안되는 병 이 병의 증세는 이전의 소리에서 악취가 나는 것 많은 빗자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랍을 열고 줄 없는 노우트를 꺼내면 당신은 꽃을 그리고 나는 아직도 짐승을 그리워 한다 남몰래 맘에도 없는 신발을 신고 아파서 .. 시로 여는 일상 2017.08.12
유홍준 사북, 북천 새의 죽음 유홍준 사북 영월 지나 정선 지나 태백 긴 골짜기 사북사북 간다 사북 사북 눈이 온다 死北死北 死北死北..... 보이지 않는 누군가 가 하염 없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북천- 새의 죽음 아무일도 없다 요즘은 심심하다 지난해 겨울 내 사는 집 유리창엔 새가 와서 부리를 박고 죽었다 나는 ..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7.08.11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 시로 여는 일상 2017.08.10
유홍준 당신의 발은 내머리 위에 유홍준 당신의 발은 내 머리 위에 계단 아래 꽃밭 있다 거기 허튼 목숨들 살다가 진다 계단처럼 죽음이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본다 모든 죽음은 계단처럼 빳빳하다 죽음이란, 구부러지지 않는 무릎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것 세상의 마지막 계단 나는 너의 발 아래 맨 가슴을 디민다 등짝을 ..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7.08.09
이정환 헌사 이정환 헌사 1.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수천 수만의 줄기의 희디흰 나의 뼈대 저문날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2. 꺾이고 꺾이어서 마디마디 다 꺾이어서 꺾이고 꺾이어서 마침내 사랑을 이룬 저문 날 모든 뼈대는 물소리를 내고 있다 시로 여는 일상 2017.08.08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 시로 여는 일상 2017.08.07
하린 서울역 석실고분 서울역 석실고분 / 하린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서울역 돌방식 무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누군가 툭 건드리자 덮고 있던 신문지 관이 열렸다면 세상에 공개된 남자의 얼굴이 낯선 부족처럼 느껴졌다면 그는 분명 전사임에 틀림없다 치열한 영역 다툼으로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고 온몸에 피멍이 솟았다면 군용 잠바 왼쪽 주머니에서 선사시대의 사진이 발견되었다면 중년여자와 어린 딸이 박제되어 있었다면 그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 속에 이물질은 분명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이 자주 찾는 독극물이다 바지 주머니를 뒤질 때 예상대로 로또 복권 한장과 폐쇄된 사냥터에서 쓸수 있는 무료 배식권이 나왔다면 그는 분명히 부족의 깨끗한 미래를 위해 제거된 무녀리다 관리자들은 관을 연 뒤 한 시간 안에 결론에 도달한다 " 1.. 시로 여는 일상 2017.08.06
신용목 모래시계 신용목 모래시계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 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 시로 여는 일상 2017.08.04
최승자 내 수의를, 未忘 혹은 備忘 2 최승자 내 수의를 내 수의를 한올 한올 짜고 있는 깊은 밤의 빗소리 파란 이승에 어질러 놓은 자리, 파란만장한 자리 없었을 듯, 없었을 듯, 덮어주고 있구나 점점 더 넓어지는 이 일대의 물바다, 그 위로 이제 새로이 구중궁궐 깊은 잠의 이불을 펴리라 未忘 혹은 備忘 2 먹지 않으려고 뱉.. 시로 여는 일상 2017.08.03
박준 호우주의보 호우주의보 / 박준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 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된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같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 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을 쓸어내는 것만 배웠다는 친구의 말도 떠 올랐다 미인은 내가 졸음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불만이었다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이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태(胎)가 자라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 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2015. 문학동네 시로 여는 일상 201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