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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이원하

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이원하 오늘은 바다가 바다로만 보이지 않네요 살면서 없던 일이에요 견뎌야 하는 것들을 한편에 몰아두고 우연만 기다려요 살면서 없던 성격이에요 사흘 전부터 운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참새가 나무줄기에 앉을 때 제비가 낮게 날다가 꽃에 스칠 때 백로가 작은 돌에 안착할 때 이 흔한 사건들이 매번 운이라면, 왜 살면서 운을 못 믿었을까요 알처럼 생겨서 그랬을까요 알에 금이 가듯 운에도 금이 간다면 땀을 닦던 손이 차가워질 테고 이것은 운을 넘어선 행운이니 이 틈을 타 손에 앉은 서리를 녹이기 위해 어딘가를 툭 건드릴 텐데 건드리면 들킨 마음에 맛과 냄새가 있을까요 * * * ' 견뎌야 하는 것들을 한 편에 몰아두고 우연만 기다려요 . . 왜 살면서 운을 못 믿었을까요 인생이..

비망록/ 김경미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싱일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 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더 행복 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