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면장갑/ 유홍준
저것을 끼고
나는 운구를 했다
무겁지가 않았다 가볍지가 않았다 아직은 사람인 사람을
들고 갔던 기억
어떤 꽃보다도 희고 어떤 꽃보다도 감촉이 좋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검은 줄이 그려진 완장을 차고, 무표정
한 얼굴로 나는 주검을 옮겼다
주검을 옮긴 면장갑을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하얀 것에 대해서 나는 설명 할 수가 없다 그냥 간직할 뿐이
다 그냥 들여다 볼 뿐이다
진주 시립화장장에서 나도
하얀 것이 될 때까지
* * *
사실 삶과 죽음은
한치 발끝에 달렸기고 하고
손바닥과 손등의 거리이기도 해서
'Well-bing'만큼 ' Well-dying' 도 중요한 삶의 철학입니다
작가들은 현상(현실) 이면까지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죽음에 대한 고찰을 일상적으로 하는 훈련이 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유홍준 시인은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쓰시는 편입니다만...
어린시절 누군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게되면 그 충격,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린시절, 저수지에 빠진 형을 건져서 집 마루에 뉘여 논 걸 놨다고 한 말을 들었어요.
이미 죽은...
그 이후부터 집에서 ' 형' 이라는 말은 금기어가 되었다고 했고요.
저 역시 중학생 시기 엄마가 돌아가셨고, 한창 생각많은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교복을 입은 채로 가서 밤을 지샌 기억
사십대 돌아가신 큰집 언니, 큰 어머니. 고모님, 삼촌, 큰아버님...
이십 중반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죽음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음을 남들보다 일찍
알게 된 셈입니다.
어머니는 말할 필요가 없고 오십 초반에 돌아가신 아버지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
늘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별로 선호하지 않는 직군입니다만... 그래도 ' 괜찮은 사람' 이라고 생각해 왔던
박원순 서울 시장의 죽음 앞에서
' 삶' 이란 무얼까 또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산자들은 다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의 죽음에 하이에나처럼 달려 들고
' 성추행' 도 잘못입니다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네요.
이전 역사는 늘 되풀이 됩니다
고려말의 권문세족과 신진 세력의 다툼
근대기 수구세력과 개화 세력의 다툼,
현재는 친일잔재, 군사독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현 정권에 대한 이전 세력의 총공세가 맞겠지요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 본 경험도 있겠다
대한민국이 일면 대단한 나라일 때도 있지만 또 편 갈라 쌈박질 하는 거 보면
징글징글하거나 역겨울 때도 많습니다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정치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
혹자는 또 그만한 권세를 누리고 살았으니 원도 한도 없는 거라고 해도 맞는 말이고...
' 명예' 로 사는 분들이라 사실이든 과장이 되었든 사회적인 지위, 남이 만든 이미지 다 내려 놓고
회피하지 않고 현실에서 직면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고 가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를 하곤 합니다.
지금 상황으로선 ' 권력위계에 의한 성추행으로 전 비서에게 고소' 당한 상태라는 거 밖에
아는 게 없고, 당사자 중 한명이 돌아가셔서 진실은 알기 어렵게 되어 버렸지만
잘못한 일 있으면 피해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법적 처벌 받을 일이 있으면 받고
견딜 거 견디고 감수하실 거 하시는 과정을 솔직하게 대중에게 보여주셨더라면
그러기에 감수해야 할 불명예나 언론의 난도질로 인격이나 자존감에 어떤 상처를 받으리라는
거 예상되지 않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주셨더라면
혹 피해 당사자나 가족 아닌 사람들이 본인이 책임질 행동 이상의 과장과 선동을 통해
정치적이거나 기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으면 그 역시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더라면..
맏딸인 저는 아버지에게 과분할 정도로 사랑과 신뢰를 받았기에 학교 졸업하고 막 경제적으로 자립한
사회인이 되어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가족간 추억이 될 여행도 다닐만 해졌는데...
실행하기도 전에 암이 걸려 자리에 누우시고 돌아가셔서... 부모님 생각만 하면
참으로 먹먹하고 아쉬운 삶입니다.
은혜만 입고 하나도 갚지 못했지요 아니, 아예 갚을 기회조차 없었지요.
나이가 50-60이 되어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분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이유입니다
아버지 늙어가시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늘 마음이 아팠고요.
그 비슷한 심정으로 한번도 뵌 적 없는 분들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노회찬 의원, (이명박 대통령 싫어하지만) 정두언 의원, 박원순 서울 시장의
70-80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게 유감스럽습니다
비슷하게 ' 백선엽 장군'이 100세로 돌아가셨습니다.
군인으로 기업인으로 ' 선린 재단' 사학재단 이사로, 외교관으로 잘 살다 가신 것 같습니다.
남북 분단과 6.25와 관련한 미국과 이승만으로 내려오는 우익, 군인들에게는 정말 '전설적인 영웅' 일테고
조선인 독립군 토벌대로 악명 높은 간도 특설대 근무나 여순 사건과 게릴라 공비 토벌과 숙군
작업을 주도한 경력은 ' 이념'에서 힘빼기를 해 버리면 ....명령에 충실한 군인
본인이 주도적으로 기회를 줘서 살리게 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의 상징이 되어 버려서 그렇기도 하고,..
아뭏든 본인의 전력에 대해 공식적 사과 같은 건 한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만(군인이어서 또 특수할 테고)
그래도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돌아가시기 전에 역사의 변화 추이는 아셨다고 짐작됩니다.
살아 있는 분 동상을 세웠다가 철거 당하는 걸 보기도 했고
(하긴 이승만 , 박정희,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동상도 그러 할진대...)
본인과 가족들은 ' 대전 현충원' 안장에 만족한다는데... ' 이게 나랴냐? ' 하고 부추기는 세력은 또 있고
박원순 시장 마지막 보내는 절차인, 장례식이나 영결식에 대해서도
한쪽에선 오프라인은 물론 ' 온라인 추모'를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선 '서울 특별시장葬 반대 청원'을 하고...
어차피 잡음은 있기 마련이지만 현 정부가 무난히 조율해 낸다는 생각은 듭니다
언제면 우리가 ' 이념' 에 의해 니편 내편 갈라 극으로 치 닫지 않고 성숙하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
질런지, 상식선에서 문제가 합의되고 해결되는 걸 보게 될까요?
그렇게 가고 있는 과정이고 언젠가는 그런 시절이 올거라고 확신합니다만
그게 언제 일까요? 통일이 되지 않고도 가능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두분 다 인생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제 살아서 짊어졌던 어깨 무거웠을 짐 다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안식에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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