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치타슬로
달팽이와 함께 느릿느릿 사는 사람의
마을에
개별꽃 곁에 키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
낡은 시집 몇 권이 전부인 백양나무
책장에서
당나귀가 어쩌다 시 한편 읽고 가든
말든
염소가 시 한편 찢어서 먹고 가든 말든
저쪽
쇠줄에 묶인 큰 개의 눈알이
진녹색이었다
신기하게 여겨 눈을 맞추는 나에게
주인은 무심히 녹내장이라 말했다
개는 이미 앞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명한 개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저쪽, 코를 내밀어 자꾸 킁킁거리며
바라보는
저쪽, 은현리 하얀민들레 한 송이 둥근
씨앗 맺었다가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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