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림
애드벌룬
마른 시간의 나뭇가지가 오그라든다
점점 오그라드는 맨발
그 마음으로부터 탁 놓아버린
걸음들
더 이상 살아가길 포기했을 때의 발은
애드벌룬이 된다
그것을 뒤쫒는 눈길도
애드벌룬이 된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몸가득 매달려 있다
하고 싶은 말 호스에 꽂아놓고
뒤꿈치만 둥실 떠오른다
저 맨발, 맨발들
바닥경전
엎드려야 보이는
온전히 몸을 굽혀야 판독이 가능한 典이 있다
서 있는 사람의 눈에 읽힌 적 없는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묵언의 수행자도, 맨발의 현자도 온전히 엎드려야만
겨우 몇 글자를 볼 뿐이다
어느 높은 빌딩에서 최첨단 확대경을 들이대고
글자를 헤아리려 들었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일찍이 도구적 인간의 탄생 이후
밤새 달려야만 수평선을 볼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바닥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던 것이다
온전히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울긋불긋 방언을 새겼던 것이다
빗물이 들이치고 폭풍이 몰아치면서
웅덩이가 패었고 글자들이 합해지거나 떨어져나가
텍스트가 필요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생을 대부분 엎드려 산 사람은
상형문자가 되어버린 이 경전을
판독해 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손끝으로 감아 올리는 경전經典의 구와 절에
바닥이 힘껏 이빨을 박고 있어 애를 먹을 뿐이라는 것이다
- 나무아래서.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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