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해림 애드벌룬, 바닥경전

생게사부르 2017. 1. 24. 17:25

박해림


애드벌룬

 

 

 

마른 시간의 나뭇가지가 오그라든다

점점 오그라드는 맨발

그 마음으로부터 탁 놓아버린

걸음

더 이상 살아가길 포기했을 때의 발은

애드벌룬이 된다

그것을 뒤쫒는 눈길도

애드벌룬이 된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가득 매달려 있다

하고 싶은 말 호스에 꽂아놓고

뒤꿈치만 둥실 떠오른다

저 맨발, 맨발들

 

 

 

바닥경전


엎드려야 보이는
온전히 몸을 굽혀야 판독이 가능한 典이 있다
서 있는 사람의 눈에 읽힌 적 없는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묵언의 수행자도, 맨발의 현자도 온전히 엎드려야만
겨우 몇 글자를 볼 뿐이다
어느 높은 빌딩에서 최첨단 확대경을 들이대고
글자를 헤아리려 들었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일찍이 도구적 인간의 탄생 이후
밤새 달려야만 수평선을 볼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바닥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던 것이다
온전히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울긋불긋 방언을 새겼던 것이다
빗물이 들이치고 폭풍이 몰아치면서

웅덩이가 패었고 글자들이 합해지거나 떨어져나가

텍스트가 필요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생을 대부분 엎드려 산 사람은

상형문자가 되어버린 이 경전을

판독해 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손끝으로 감아 올리는 경전經典의 구와 절에

바닥이 힘껏 이빨을 박고 있어 애를 먹을 뿐이라는 것이다

          

                                    - 나무아래서.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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