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전영관 서어나무, 느릅나무 양복점

생게사부르 2017. 1. 19. 22:29

전영관


서어나무(西木)


천국이란
치료가 필요 없는 영혼들만 모이는 곳
그리움에 감염되면 이승으로 보내졌다

바람을 갈망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거나
구름의 안색을 살피는 영혼들은
귀환을 거절당하고 나무가 되었다

근육을 다 꺼내 놓은 채
바람과 몸을 섞는다
뿌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기다린다는 건 앓는 일
한 자리에서 끝장나도록
뿌리로 스스로 결박한 것들
그리움 따위를 병으로 간직한 것들

 

 

 

 

 

느릅나무 양복점

 

 

 

물에 불려도 다림질해도

불거진 무릎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한다

책상에 문드러진 팔꿈치도 매끈함을 잃었다

펴지지 않는 어깨는 누가 두드려주나

봄에 적어 놨던 산철쭉 주소와

기러기 울음을 채록한 악보를 주머니에 넣었는데

밑이 터져 버렸다 좋은 날 쓰려고 아껴 두었던

함박 웃음 몇 조각도 간 곳 없다

안색을 거들어 주던 깃은 주저앉았

단춧구멍은 채워도 삐걱거릴 만큼 헐겁다

아버지가 달아주신 채로 오십 년을 지나쳤으니

수시로 기워주시던 어머니도 팔순을 넘겼으니

알아서 새로이 장만할 때가 된 거다

느릅나무 그늘에 한 나절 기다렸다가 맞춤으로

그림자 한 벌 챙겨 입고 돌아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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