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임승유
휴일이 오면 가자고 했다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는 너 사이로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는 걸 알려면
풀을 안 보면 된다 다음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네가 알게 된 것을
모르지 않는 네가
왔다가 가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 2016. 현대문학상 수상작
구조와 성질
창문을 그리고
그 앞에
잎이 무성한 나무를 그렸다
안에 있는 사람을 지켜주려고
어느 날은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우고
창문을 그렸다
한손에
돌멩이를 쥐고
1973년, 충북 괴산
2011년 문학과 사회 '계속 웃어라' 등단
심사평
삶의 요령부득과 허망함을 독특한 형언形言으로 받아내고 있는 임승유의 시들은
2000년대 이후 출현한 한국 시의 젊은 어법을 한 단계 갱신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의 어투는 그런 만큼 낯익고 또 그만큼 낯선데, 어느 경우건 드문 생생함을 유지하고 있다.
꾸밈말이 극단적으로 절제되거나 구문과 구문, 말과 말들이 독특한 각도로 어긋나거나 교차되며
일상어에 긴장을 부여하는 임승유의 시적 모험은, 생의 치욕과 무력감에 대한 대응으로서
충분히 새롭고 성실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김사인(시인 · 동덕여대 교수)
수상소감
시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시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시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시.
써놓고 나면 한 편의 시일 수밖에 없는 시.
언어로 시작해 언어를 경유하면서 종국에는 언어만이 아닌 어떤 지점에 가 닿고 싶었다.
대상에서 시작해 대상의 결을 통과하면서 대상 그 자체가 언어에 다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랐다.
작업은 인위적인 것이지만 인위가 끼어든 자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장 가까운 말에 기대 조금씩 움직였다.
일상적이지 않은 말은 끼어들 자리가 없도록, 낯선 사물은 놓일 자리가 없도록 하면서.
태양이 뜨는 자리에 바람이 부는 장면을 가져다 놓아도 이상할 게 없는,
기다리는 자의 의자에 떠나는 자의 의지를 부려놓아도 작용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도록 하면서
맞닥뜨리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익숙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가장 낯선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사람의 표정.
상을 받았으니 이런 정도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몇 문장 적었지만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메마른 자세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이런 자세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다르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써놓고 내가 읽었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은 다른 사람이 읽겠지 그러면서.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덜컥 겁이 나면서도 감사하다. 조금은 더 해보라는.
해볼 만큼은 해보라는. 가장 가까운 말을 통해 가장 이상한 곳까지.
갈 데까지 가보라는. 그런 주문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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