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두고 온 것들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 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 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 챘으리라,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 간
뒤 방금 들은 식당 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 오르는 거리들, 약속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 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날 내가 살었는지 안 살었는지도
모를 삶이여
좀 더 곁에 있어 줬어야 할 사람들,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점 배달시키랴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세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 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1952년생. 전남 해남
1980.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이 입선으로 등단
* * *
시인이자 미술평론가, 희곡을 쓰시고
문필인으로 교수로 사시며 한국 예술종합학고 총장까지 취임하셨으며 시집도 충실히 내셨다
삶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는 아니더라도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 시 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상도 받으실 만큼 받으셨고 2006년 옥관 문화훈장도 받으셨다니 그렇게 많이 아쉬울 것 같지는 않으실 듯 ...
그럼에도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의 패기만만했던 젊음이 ' 두고 온 것들' 에 이른 어쩔수 없는 세월
시인의 심정을 이미 나도 안다.
함께 근무했거나 오래 알아왔던 사람... 나의 경우 이름은 생각나는 데 성씨가 헷갈릴 때가 많았다.
특히 흔한 성씨가 그랬다. 김, 이, 박...
머릿속에서는 이미지가 맴도는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중요한 약속이라 신경을 썼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장소나 시간이 헷갈리는 상황
여성들의 경우 첫 출산 이후나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는 시기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호소를 자주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 본인이 정신을 똑 바로 안 차려서 그렇지 뭐!
한국 여성들 특히 결혼하고 나면 여성지외에는 책이라고는 잘 읽지도 않으면서..."
나는 남들 보다는 좀 늦게 온 셈이지만 이즈음은 눈에 보여야하고, 즉시적인 내용만 기억 할뿐
두가지를 동시에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화를 받으며 커피를 마신 경우, 커피를 마셨는지 아닌지 혼란이 오는 것이다.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순리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려 노력한다
우선 기록하는 방법이 있는데, 메모를 기록 해 놓고 그 기록된 종이를 통채로 잃어버리는 것 까지 염두에 둬야하고
요즘에야 휴대폰에 스케줄을 저장해 놓지만
대략 두달정도 약속을 큰틀로 단기기억 했다가 약속 날짜에 가까이 가면
이달의 약속, 이번주의 약속, 오늘의 약속 등으로 집중하는 방법을 쓴다
황지우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설명을 부연한다.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문학계간지 〈외국문학〉과 〈세계의 문학〉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94년부터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했다.
2002년 월드컵 문화행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05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위원회 위원장 및 주빈국 조직위원회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시작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으며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를 주로 썼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와 분리될 수 없는 그의 시에는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시적 파괴의 형태로 융화되어 있으며 시인은 시적 화자의 자기부정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꾼
시대와 함께 한 행동하는 시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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