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생게사부르 2016. 9. 8. 08:11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
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초록 꽃물
을, 시집 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 주듯이 물감봉지를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
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
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
다. 나에게는 물감 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
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갖은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타는 사랑은

 

 

태양에 끄을린 살갗이

하루나 이틀쯤 쓰려오는

팔월이면 별이 박히듯

떠오르는 여자들이 있어

아파라

 

살뭉치로 살뭉치로 와서

타는 사랑은

물집이 생기는 아픔으로 일어

올리브 향유나 바르며

온 밤을 뒤척이게 하고

 

아내 몰래 창가에서

그 옛날 여자들의 이름을 죄처럼 쓰고

어떤 때는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지우나니.

 

팔월이면 어이하여 살이든지,

마음이든지

이리 불타고

 

살아 있다는 것이

가만히 가만히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씩 떠 올리듯

행복하기만 하냐

 

 

 

 

강우식. 1941. 강원 주문진 출생

1966. 현대문학 등단

 

 

1941년 生이니 그냥 나이 일흔 여섯이시네요.

젊은 시절, 초기시 입니다.

잔잔한 일상을 담담하게 쓰시는 편

 

후에 쓰신 '가지볶음 '  '오이 ' '도다리 쑥국' ' 붕어찜' '해물파전'등의 시도 재밌게 읽습니다.

약간 외설스러울수도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셨을 나이 드신 분 특유의 인생 경험, 그 저력이 느껴집니다.

이상국 시인도 그렇지만 칠십이 넘도록 시를 쓰시는 분들에게서 보게되는 詩歷의 증거들

소재나 표현이 참 쉬우면서  ' 아 ! 맞아 인생이 이렇지'

요즘 본인도 조금씩 느끼는 것이지만 ...

 

' 그래 인생 언제 끝날지 누가 알아 , 잘못 돼 봐야 죽는거겠지'

 

젊은 날 '이판사판'이 선택이나 일 처리의 미숙함으로 다소 위험스럽고 무모하게 달려드는 거라면

나이 들어 갖는 '이판사판'의 생각은 어느정도 인생을 안다는 자신감으로 안정적이면서

망설임을 줄여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라고 북돋우는 점이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평생을 시를 쓰거나 음악, 그림등 예술을 하면서 사신분들

개인에 따라 외형적으로 판단하는 성취정도가 다를 수 있고

혹 생활이 곤궁했을지라도 마음만은 부자였을 것 같습니다.

 

문학하시는 분들, 욕심이 없는 분들, 오래 장수하시던데 ...

건강지키셔서 앞으로 시집 몇권 씩 더 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