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병은 말맛, 썩는다는 것

생게사부르 2016. 6. 23. 06:59

신병은

 

 

썩는다는 것에 대한 명상

 

 

두엄을 져 내면 거기 속 썩인 흔적들 환하다

팽개쳐진 것들의 잃어버린 꿈과 상처 난 말들이 오랫동안 서로의 눈빛을 껴

안고 견뎌낸 시간, 맑게 발효된 생의 따뜻한 소리가 있다 곁이 되지 못한 시

간의 퇴적 속에서 헐어진 채로 낯선 외출을 준하는 겨울묵시록, 아직 할

말이 많은 세상의 행방불명된 말들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기 위한 기다림이

라고 염치도 없이 환하게 닿아오는 맑은 생각

썩는다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뭔가로 다시 태어나고픈 것들이 젖은 기억

껴안고 산란한 눈부신 겨울 우화, 맑게 썩어 향기된 함성들이 하얗게 겨울

들녁의 혈맥을 세운다

꽃이, 노란 봄꽃이 되고 싶다고



 

 

말맛


달콤한 말, 쓴 말, 매운 말, 알싸한 말, 싱거운 말, 짠말, 부드러운 말, 향기로운 말, 입맛 떨어졌던 말, 감

칠맛 나는 말, 기쁨을 주는 말, 살맛나게 하는 말, 행복했던 말, 화난 말, 짜증난 말, 편안한 말,

위태한 말, 뼈있는 말, 물컹한 말, 가는 말, 오는 말, 긍정의 말, 부정의 말, 조롱하는 말, 눈으로 하는 말,

입으로 하는 말, 가슴으로 하는 말, 몸으로 하는 말, 온몸으로 하는 말, 통하는 말, 통하지 않는 말, 씹을수록 향

기 나는 말, 사랑의 말, 속보이는 말, 그리움의 말, 햇살의 말, 안개의 말, 바람의 말

말맛을 알면 그때서야 세상이 다 보인다
시가 보인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김수영  (0) 2016.06.25
이정록-속울음  (0) 2016.06.24
이규리 많은 물  (0) 2016.06.22
이규리- 예쁘기를 포기하면  (0) 2016.06.21
이원-엽서, 공기에게  (0) 201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