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규리- 예쁘기를 포기하면

생게사부르 2016. 6. 21. 01:16

이규리

예쁘기를 포기하면



TV에서 본 여자 투포환 선수나 역도 선수는 예쁘지 않다
화장기 없는 그 얼굴들은
예쁜 것을 뭉쳐서 멀리 던져 기록으로 바꾸었다
미모의 탈렌트가 예쁘기를 포기하니 단박 연기에 물이
오르고
예쁜데 신경 쓰지 않는 라면집 아줌마가 끓이는 라면은
환상적이다
그런데 왜 여자는 예쁘기를 포기하지 못할까
그건 누가 가르치는 게 아니다
아버지 돌아 가시고 상복 입은 상주가 되어서도 나는
여러번 거울을 보았다
표시 날 듯 말 듯 입술도 그렸다
뒤태까지 살피다가 문상객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부끄러움 아직 화끈거리지만
모전여전, 여든 내 어머니도 아직 노인정 갈 때
입술을 몇 차례 그렸다 지웠다 한다
아무도 여자로 봐 주지 않는데도 여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놓으면 편한데 결코 놓지 못하는
그 힘도
말릴 수 없는 에너지라면 에너지다
세대를 건너오는 발그럼한 불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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