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엽서
마악 너의 주소를 적어 넣으려 하고
있어 오늘의 공기는 딱딱해
너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넣을 때 창가의 수선화가
제 우주를 마악 열지도 몰라 그럼
열린 수선화 속에 너의
이름과 주소를 빠뜨릴 거야
너의 이름과 주소에서는
온통 수선화의 우주가 만져지겠지
공기도 리듬의 붕대를 풀 거야
엽서의 오른 쪽 구석에서
목에 동그란 방울 두개를 단
고양이가 마악 초록 눈을 뜨고 있어
오늘을 팽팽하게
감각하고 있는 눈이야 빛나는 털은
안테나처럼 사방을 잡아 당기고
수염은 몸 밖 멀리 뻗고 있어
그 고양이의 초록 눈 아래
너의 이름을 적었어 날숨 속에서
너의 이름이 보드랍게 빛났어
너의 주소를 꿈틀굼틀 이어 적고
여섯개의 빈 사각에
고양이의 발자국 같은 우편번호를
적었어 사각이 출렁거려
셋째칸의 숫자가 사각을
비집고 나가 이탈한 꼬리를 따라
사각끝이 툭툭 터지고 있어
6개의 또 다른 빈 사각은
고양이와 마주보는 곳에 매달렸지
사각 안을 채우지는 않을 거야
내가 그곳에 있어
들고 있는 만년 필에서 잉크가
뚝 열매처럼 떨어졌어
공기의 귀가 떨어져 나가 사방에서
바람이 몰려들고 있어
문들이 덜컹거려 자꾸 잉크가 번져
너의 이름과 주소들이
우글거려 시간이 엉키고 공기가
버석거려 쪼개도 쪼개도 공기의 속은
말갛다고 숨이 막혀
너에게 새파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어 그러나 결코
그 무엇도 너를 관통할 수는 없어
쓰라린 흙처럼 내가 너를 덮어
공기에게
조금만 더 안으로 밀고
들어 와 줄수는 없겠니
들어와 숨막히게 아니 몸막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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