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순 1
공간
옆 셋방 할머니는 골목 한쪽 귀퉁이
아주 작은 공간에 아무도 곁눈질 못하게
반듯이 봄을 그어서
표적을 해 놓는다
네 귀에 말뚝 박고 나이롱 끈으로 줄을 쳐
왼종일 텅빈 공간을 주물러 반죽을 한다
등 돌린 모래알 달래어
실핏줄 이어 놓는다
누런 봉지 속 추억의 씨앗들을 깨운다
"일어나, 방이 생겼다. 울타리도 쳐 놓았다
파란 눈 크게 떠 보아라
고추, 상추 내 새끼들아!"
눈부신 봄날
눈부신 봄날에 눈물범벅 꽃범벅
꽃피면 환하다가 꽃지면 깜깜하다
이렇게 한 세상 가는구나
봄날이 가는구나
어머니 숨 거두기 전
마지막 봄 보여 드리려고
풋솜처럼 가벼운 몸을
포대기 둘러 들쳐 업은 동네 골목
눈 부시게 봄날이 간다
눈부신 봄날이 가는 구나
작가에 대하여
1946 ~ 2010. 11
전북 익산(이리)
89년< 월간문학>으로 활동 시작
동아방송 성우, 시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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