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두안 거미집, 돌과 잠자리

생게사부르 2016. 4. 8. 00:59

거미집/  김두안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
를 코끝에 저울질 해 본다 그는 간간이 부는 동남쪽 토막
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 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낸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 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 넣는다 무늬 같

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벼텨 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

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엮는다 앞발로 허

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 붙인다 끈적끈적한 길들

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 할 것이다 그가 완

성된 집 한 채 흔들어 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돌과 잠자리

 

 

 

잠자리가 돌 위에 앉아 돌을 읽는 동안

 

나팔 줄기

나뭇가지 그림자 위에 헛발을 딛습니다

 

잠자리가 돌의 중심 갸웃갸웃 읽어 가는 동안

 

사내는 나무그늘 밑으로 손 그림자 가만히 내밀어

잠자리 꼬리 잡아 봅니다

 

떴다 앉았

 

잠자리가 비밀스럽게

얼굴을 가리고 돌의 모서리 다 읽어 가는 동안

 

마당가 해바라기

먼 길 바라다보다 까맣게 익은 얼굴 떨굽니다

 

이제 기다림이

사내의 한쪽 모서리를 초조하게 읽어 가는 동안

 

구겨진 돌멩이 다시 몸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김두안. 1965년.

            2006 한국일보 신춘문예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