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박성현
수선화가 피었다 발가 벗은 백발이 끓어 올랐다 옛날의 저녁이 다녀갔다 옛날의 저녁은 바스락거리며 혼자 기웃거
렸다 손가락을 움켜쥘 때마다 우산이 물컹거렸다 수선화가 피었다 눈을 활짝 열고 창틀에 고인 빗방울과 그늘을 지
켜 봤다 여름이 가고 또 다른 여름이 갔다 짧은 엽서도 없는 계절이었다 라디오는 식은 밥처럼 차가웠다 저 플라스틱
상자는 언제 쯤 노래를 흥얼거릴까 오래동안 당신이 앉아 있던 자리가 희고 간결했다 희고 간결해서 아주 멀었다 나
는 내 발목을 움켜쥐었던 빗방울과 그늘을 뒤척였다 다시 수선화가 피었다 옛날의 저녁이 기척도 없이 다녀 갔다
- " 내가 먼저 빙화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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