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울음의 안감/정선희

생게사부르 2021. 1. 7. 10:52

울음의 안감/ 정선희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설익어 목소리가 갈라지는 울음이 있고, 색을 덧발라

속이 안 보이는 울음이 있고, 물기가 가득해서 수채화처

럼 번지는 울음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 아이는 속으로 자란다

그날 호주머니의 구멍 난 안감처럼

울음을 움켜 쥔 손아귀에서 허무하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 후 내가 만난 모든 울음은

그날 밤에 바느질된 듯 흐느끼며 이어져 있다

실밥을 당기면 주르륵 쏟아질 그날의 목록들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다섯 여자가 모여 앉아

울음 같은 모닥불에 사연 하나씩 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다른 사람, 몰랐던 사람이었다

 

관계란 아름답지 않은 한 줄 문장 같은 것을 붙잡고 

있는 것

 

울음은 죽은이에게 가지 않고 자신을 적신다 얼룩질

텐데 

죽음을 당겨 울음의 안감으로 쓰는 거라 이해했다

 

그날 가장 서럽게 흐느끼던 안감, 어머니를 보며

나의 습습해진 어딘가를 쓸어본다

 

 

 

*      *      *

 

 

정선희 시인 

두번째 시집이 나왔네요.

축하합니다.

 

무엇보다 나날이 좋은 시를 곧잘 쓰고 있다는 거

여성의 지적활동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 같았으면...

무속인이 되어 칼춤을 추었을까?

정선희 시인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얘기입니다

올해도 건필하세요.

 

시집 : 푸른빛이 걸어 왔다. 2015. 1. 시와 표현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2020. 10. 상상인 시선

 

 

산청 학이재서 정선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