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서천(西天)으로 / 최정례

생게사부르 2021. 1. 18. 16:43

 

 

최정례 시인

 

 

 

서천으로 1

 

 

서천(西天)으로 냇갈에 고기 잡으러 갔다 

솜 방맹이 석유 묻혀

깊은 밤 검은 내 불 밝히면

붕어들 눈 멀거니 뜨고 가만 있었다

흐르는 냇갈 안고 자고 있었다

밑 빠진 양철통 갖다 대도

아직 세상 흐르는 줄 알고 가만 있었다

우리 언니 죽을 때 꼭 그랬다

착한 눈 멀거니 뜨고

입 벌린 채

 

 

 

서천으로 2

 

 

혼자 우는 새가 있었고

 

빈 자리가 혼자 비어 있었고

 

조금 비껴 서서 꽃이 피었고

 

괜찮아 괜찮아 앉은뱅이꽃들 쓸어안았고

 

돌아 앉은 얼굴들 바람에 터졌고

 

내 마음에 영 어긋난 길을 떠났고

 

 

 

*     *     *

 

 

최정례 시인 66세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창작이란 거,

특히 시를 쓰는 일

사람이 할 수 있는 정신영역 최고의 결과물이자(승화(昇華)) 

영혼이 얼마나  힘들게 몰아 부쳐야 하는 일인지 

조금은 압니다

 

' 우리 언니 죽을 때 꼭 그랬다

착한 눈 멀거니 뜨고

입 벌린 채'

 

어린 시절,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를 때

삶의 생기로 충만하기에도 부족한 시기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하면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나 형제자매의 죽음은 직, 간접적으로 평생 자책감을 갖게 하는 트라우마를

갖게도 하고요.

너무 일찍 접한 죽음의 상처는 아이를 애 늙은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시인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어서 개인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나 숙명 같은 게 있을까요?

 

지난 토욜(16일) 암 투병 끝에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얘길 접하고

시인의 여러 작품들이 떠 올랐습니다만

서천(西天)을 선택했습니다

 

'세계일보'에 실린 기자님 심정에 공감합니다. 

' 시인은 갔지만, 그의 길이 깊은 시는, 언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을 진정 아름답게 보내주고 싶다면 그의 시를 읽고 낭송할 것, 눈 맑게. '

 

부디 육체 고통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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