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남 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 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 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 곳이 아니길
이 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안을 맴돌고 있을거라고
뒷 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 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2021. 문화일보 신춘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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