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해감/고영민

생게사부르 2020. 8. 18. 11:06

해감/ 고영민

 

 

민물에 담가 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제 몸 속에

새겨 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렁,그러렁 입가로

한 웅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干

潮線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의

안쪽에 헐겁게 담겨져 있었다 짠물을

걸러내며 당신은 물무늬 진 사구를

온 몸으로 기고, 몸을 잊으려 한쪽

눈을 마저 닫자 날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울컥 울컥, 검은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토해졌다 나는 당신의

손가락을 움켜쥔 채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 들어 갔다. 여윈 갈빗대에서

해조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제 오지마라! 따라 오지

마라고 이놈아! 라는 당신의 불호령을

들었다 두꺼운 껍질 밖으로 나는

움찔, 한순간 떠밀려 나왔다 패각을

움켜쥔 채 꼭 사나흘만 더 묵고

싶다던 당신의 늙은 아내가

밀려 나왔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제 몸

밖으로 검은 해변을 푸륵푸륵,

싸 놓았다. 시끄럽던 한 생애가 말갛게

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