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빌미/ 송미선

생게사부르 2020. 8. 7. 07:48

빌미/ 송미선

 

 

작은 꼬투리를 잡아 달맞이 꽃을

피우기로 했어요

꼬투리를 빌미로 한바탕 춤판을

벌였어요

달이 변하는 것을

모서리와 모서리 틈에서 간신히 볼 수

있었지만

기억을 꺼낼 때마다 달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어요

당신의 표정에서

좁혀진 미간을 읽을 수 없지만

코의 핑계가 싹 트네요

 

누구의 입에든 오르내리기 위해

준비해 둔 대답에 알맞은 질문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날은 오해라며 침 튀길수록

골은 깊어지고

검지로 넘기던 페이지가 감질나

페이지에 입술을 갖다댔어요

 

꼬투리를 헤아리는 사람들의 발 끝

고단함을 훑어 봤어요

뒤집어 쓴 모자 속에서

달맞이 꽃이 무더기로 나오네요

 

스며들 나를 스며든 당신이

밀어내는군요

원근법에 충실한 골목처럼 점점

좁아지는 숨구멍은

곧잘 진땀을 흘리네요

 

지금은 피노키오의 코가 필요한 순간

 

 

*      *       *

 

 

서로 좋을 땐 어떤 무례도 개성으로 보이고

그(녀)다움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신뢰에 금이가고

감정이 상하고나면

어떤 예쁜짓도 밉게 보이고

자꾸 빌미를 찾는다

 

거절할 빌미

함께하지 않으려는 빌미

싸울 빌미

헤어질 빌미

 

핑계가 늘어나고...

 

시의 상대는 능청스럽지 못하던지

빌미를 찾기에 부담스런 관계이든지

고단해 하고 곧잘 진땀을 흘린다

 

피노키오의 코가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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