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생게사부르 2020. 7. 30. 10:15

장마/ 박준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그 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2018. 12. 13. 문학과 지성사

 

 

*     *     *

 

박준 두번째 시집의 표제였던 시네요.

 

내 성장기 신문기사나 뉴스에

갱도가 무너져 갇힌 광부 이야기

그들을 구하던 이야기가 자주 나왔더랬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던 중에

벽면을 두드려 보면 누군가 미세하게 반응을 해 온다는

그야말로 미세한 희망 같은 걸 알려 주던

... 갱도가 무너진지 얼마 만에 구조 되었다는 소식 같은

깜깜한 절망 속에서 본인의 소변을 받아먹기도 했다든가

한 줄기 빛이 들어 왔다든가 같은 후일담을 간혹 듣게 되고

희망이 확신으로 끝을 맺어 기뻐했던 일만큼

더 자주 주검을 발견해 침통했던

 

석회석으로 하얗게 덮힌 지역이나 검은 물이 흐르던 하천을 지나 가 본

적은 있지만

가서 생활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 중남미 어느나라에서 탄광이 무너져 갱도에 광부들이 갇혔다는 얘기가

아주 생소하게 들렸던 것은 이제 우리는 과거가 되어버린 탓일테지요

 

이제 탄광촌은 사라진 과거일테고 여전히 가 볼 기회가 잘 없어서

관광지로 연명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인은 그들이 아사나 질식사가 아니라

터져나온 수맥에 익사를 한다고 하네요

 

오늘 지나간 옛 얘기를

지금 여기서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

그들은 사라져 간 시간, 혹은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쓰는 일이라서 그럴테지요.

 

이 여름, 긴 장마철

난민처럼 실내에서 빨래를 말리면서

 

코로나 백신 임상 소식보다 관련개발 주식 이야기가 더 많고

여전히 혼돈인 정치 소식을 접하면서

 

박준의 시와 이원하의 시를 읽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다른데 해설은 ' 신형철' 평론가가 썼네요

 

박준 시인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과 동시에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같이 냈는데 이원하 시인도 그런 모양

현재는 세 사람 다 ' 대세 현역' 입니다만

박준 시인은 시 창작보다 출판일에 더 바쁜 시기인 듯하고...

 

이원하 시인은 아직 시의 여정을 더 봐야 할 거 같네요

등단 이후 잠시 핫하게 떴다가 시간 흐르면 사라지는 시인도 많은 한국 시단이라...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를 읽었던 첫 느낌

 

전통적인 시들은 상징과 비유가 어려워서 일반인들이 시를 가까이 하기에

힘든 점이 있는데...가볍게 터치하듯 하는 시들이 일단 신선했습니다

아직 이십대라 첫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예쁠 때이기도 하고요.

 

' 장소' 를 제주에서 ' 헝가리'로 옮겨갈 예정이라는 기사까지 봤는데

공간적인 변화와 상관없이 삶에 대한 내공이 쌓여 가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소설을 보다가 ' 박지리' 소설가를 알게 되었는데 30세 남짓 생을 이미 마감 했으니...

6-7년 창작 활동에 생애 총 에너지를 다 썼나 봅니다 

 

짧고 굵게( 주로 그 분야 타고난 천재들인 경우가 많더군요)

가늘게 길게.... ' 삶은 긴 마라톤'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인생의 책무라 생각하면 참으로 고루하고

무미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