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이원하

생게사부르 2020. 7. 28. 08:05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 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기분과의 타협끝에 오 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좁은 보폭으로 아껴가며 걷는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 간다면 내일쯤

이런 거, 저런 거 모두 데리고 비를 떠밀 것이다

 

걷다가 밭을 지키는 하얀 흔적과 같은 개에게

엄살만 담긴 지갑을 줘버린다

엄살로 한 끼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으니까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 가는 길

 

검은 돌들이 듬성한 골목

골목이 기우는 대로 나는 흐른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미가 해놓은 첫 줄을 검사하다가

바쁘게 빠져나가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       *       *

 

 

시인은 대체로 웃는 사람이길 원하지만

' 웃음'의 반대 편 , 감정의 시소에는 울음이 얹히니까

 

어른이 되고나면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는 어둑한 시간

어둠이 내리는 시간

억압된 울음을 울 수 있는 시간

 

사람의 위로조차 불편하고 번거러워서

오로지 바람의 목소리 그 진동만으로  ...

 

그래도 아직 건강한 울음인 것이

스스로 ' 엄살'이라고

'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허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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