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 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기분과의 타협끝에 오 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좁은 보폭으로 아껴가며 걷는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 간다면 내일쯤
이런 거, 저런 거 모두 데리고 비를 떠밀 것이다
걷다가 밭을 지키는 하얀 흔적과 같은 개에게
엄살만 담긴 지갑을 줘버린다
엄살로 한 끼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으니까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 가는 길
검은 돌들이 듬성한 골목
골목이 기우는 대로 나는 흐른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미가 해놓은 첫 줄을 검사하다가
바쁘게 빠져나가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 * *
시인은 대체로 웃는 사람이길 원하지만
' 웃음'의 반대 편 , 감정의 시소에는 울음이 얹히니까
어른이 되고나면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는 어둑한 시간
어둠이 내리는 시간
억압된 울음을 울 수 있는 시간
사람의 위로조차 불편하고 번거러워서
오로지 바람의 목소리 그 진동만으로 ...
그래도 아직 건강한 울음인 것이
스스로 ' 엄살'이라고
'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허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