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 임화
- 네 만일 너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이는 사랑이 아니니라.
너의 적을 사랑하고 너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 『복음서』
1
너희들의 적을 사랑하라 ─
나는 이때 예수교도임을 자랑한다.
적이 나를 죽도록 미워했을 때,
나는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미움을 배웠다.
적이 내 벗을 죽음으로써 괴롭혔을 때,
나는 우정을 적에 대한 잔인으로 고치었다.
적이 드디어 내 멋의 한 사람을 죽였을 때,
너는 복수의 비싼 진리를 배웠다.
적이 우리들의 모두를 노리었을 때,
나는 곧 섬멸의 수학을 배웠다.
적이여 너는 내 최대의 교사,
사랑스러운 것! 너의 이름은 나의 적이다.
2
때로 내가 이 수학 공부에 게을렀을 때,
적이여! 너는 칼날을 가지고 나에게 근면을 가르치었다.
때로 내가 무모한 돌격을 시험했을 때,
적이여! 너는 아픈 타격으로 전진을 위한 퇴각을 가르치었다.
때로 내가 비겁하게도 진격을 주저했을 때,
적이여! 너는 뜻하지 않는 공격으로 나에게 전진을 가르치었다.
만일 네가 없으면 참말로 사칙법(四則法)도 모를 우리에게,
적이여! 너는 전진과 퇴각의 고등 수학을 가르치었다.
패배의 이슬이 찬 우리들의 잔등위에 너의 참혹한 육박이 없었다면,
적이여! 어찌 우리들의 가슴속에 사는 청춘의 정신이 불탔겠는가?
오오! 사랑스럽기 한이 없는 나의 필생의 동무
적이여! 정말 너는 우리들의 용기다.
너의 적을 사랑하라!
복음서는 나의 광영이다.
『현해탄』 , 임화, 열린책들, 2004년, 113~115쪽
[출처] 임화 시인의 시 '적'|작성자 주영헌
한국전쟁 70주년입니다.
한 인간의 생으로 쳐도 철들 나이가 되었는데요.
이데올로기에 의한 갈등 대립이 과거가 아닌 여전한 현재 상황
수원을 하루 다녀 오는 중 휴게소에서 밥을 먹다가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을 접했습니다만
정치, 군사, 경제적 목적이외 문화생활적으로는 제법 자유로워진편입니다
월북시인이나 북조선에 있는 작가들 중
백석 시인은 이제 거의 제약 없이 남한에서도 사랑받는 시인이 되었고요.
그러나 임화 시인은 정치색이 강한 혁명 시인이었기에 남에서는 물론 참다운 인민의 조국으로 선택한
북에서마저 박헌영의 남로당 몰락과 함께 마흔 다섯 나이에 평양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에서 표현을 빌려오면 ' 역사의 격랑 속에 침몰한 혁명시인' 이네요
임화 시인에 대한 소수 전문가들은 있지만 이념을 떠나 한 인간으로 시인이나 평론가 영화인으로 삶의 족적을
회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임화 시인이 자신의 삶 중에 결핵요양을 하는 와중에 2년 7개월 정도 가장 평온했을 시기를 보낸 흔적들이
마산에 남아 있습니다.
남성동, 상남동, 추산동 등에서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다른 장소는 다 철거되어 흔적이 사라졌고
지하련의 오빠 집이었던 1930년대 문화주택이 주택 재개발 사업에 들어 있어
' 근대문화유산 원형 현지 보존'을 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민단체와 창원시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에 이어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오빠를 통해 일본 동경에서 처음 만나(1930)
결핵에 걸린 임화를 찾아 평양으로 올라 갔다가(1934) 마산으로 데려오면서 결혼까지 하게된 여류 소설가
임화 소식을 듣고 구명을 위해 미친듯 돌아 다니다가 처형소식을 듣고 거의 실성하여 북한의 교화소를
전전하다가 50에 생을 마감한 지하련의 사랑도 참으로 가슴 먹먹합니다
한때 드나들고 나중에 간병 중에 지하련이 결핵에 걸려 머물면서 작품이 탄생한 곳
작품에 나오는 배경의 토대가 되는 곳
' 지하련 주택' 이 그것인데 재개발 조합측과도 협의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며 시민단체의
노력, 창원시의 협조 삼박자가 맞아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아파트조성을 위한 경제적 이득에 앞서 격랑의 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 정신'이 깃든
문화유산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공감대 시민의식의 결실로 보여집니다.
그와 관련하여 지하련과 임화에 대한 흔적들이 함께 조명이 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 영
역이어서 지난 토요일 ' 지하련 주택'을 방문했고, 23일 창원시 의회 회의실에서 열린 ' 지하련 주택' 현지
보존 방안을 위한 토론회도 참석을 했습니다
주택상황은 개인 소유로 방치된데다 화재로 인해 폐가가 된 실상, 시대의 격동기 임화와 지하련의
사랑만큼 참담했습니다만 곧 사랑받는 공간으로 재 탄생되길 바랍니다
동시에 남북의 이념을 벗어난 근현대 역사가 재평가 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를 확인한 셈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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