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자칭 詩/ 최승자

생게사부르 2020. 6. 21. 22:53

자칭 詩/최승자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하여,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詩가 쏟아 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詩의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詩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도 잠가도,

새어 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 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詩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

 

 

*     *     *

 

 

허수경 시인의 시가 먹먹하다면

최승자 시인의 시는 섬뜩하달까

사랑에 관한한 아름답기보다 비극에 가깝고

삶의 환희보다 절망과 죽음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그런 언어의 시를 쓰는 분

그래서 더 생명력이 도드라지는...

 

어떤 삶이 정상이다 아니다라고

감히 누가 얘길할 수 있겠냐만

평균을 벗어난 삶의 극에 가 봤던 분이라서

 

그래도 살아 남아서...' 다행입니다' 라고 하면 뭐라 하실지

 

어떤 세월이든 삶은 살아 내는 것, 견뎌 내는 것인데

시인들은 사랑이든 뭐든 몰입하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이 활활 타버리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주리를 틀 시대

잠가도 잠가도 틈새로

쏟아져 나와야 할텐데

시를 쥐어 짜는 사람은?

 

 

뿅 망치로 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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