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감정/ 최문자
재가 된 그를
북쪽으로 가는 거친 파도위에 뿌렸지만
그는 익사하지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죽음은 아무래도
내게 잘못 보내 주신 낯선 짐승
도심 어느 골목에 멍하게 서있는 얼룩말 한 마리
그가 없는 밤이 지나가면
밤이 왔다
우리만 모두 살아 있는 새벽
내다버린 유품들이 비를 맞았다
죽음은
한장을 넘기면 또 한장의 털이 다른 가슴
무턱대고 감정을 만드는 모조 같은 하양과 검정
부스럭거리며 살아서 온다
전에는 닳도록 시만 썼는데
시에서 한 사람을 빼는 일
안보일 때까지 깜빡거리는 흑백의 잔등이다
검었다 하얘졌다 하는 심장 사이
하는 수 없이 숫자로 가는
눈물 투성이 초침사이
내일 켜질 불빛은 또 다른 검정감정
내가 아닌 그도 아닌
이것은 어떤 잠일까
스칠 때마다 슬픈소리가 났다
세상은 언제부터
나를 마구 읽어내는 독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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