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유종서 나비물

생게사부르 2019. 9. 1. 09:31


 

나비물/ 유종서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 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되겠냐
흙꽃*에게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 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 오는 저 호접蝴蝶은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 제 9회 천강문학상 시 수상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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