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정인 그늘의 공학

생게사부르 2019. 6. 22. 09:40

 

 

그늘의 공학/ 박정인(정옥)



느티나무에 출입금지판처럼 표지가 나붙었다

 

옹이는 막힌 길,
가지가 방향을 바꾸려는데 걸린 시간의 배꼽이다
다다르지 못한 초록에게서
필사의 아우성이 이글거릴 때

직박구리 한 마리, 옹이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수액 길어 올리던,
이제 사라진 가지의 길을 물고 대신 새가 가지를 친다

 

빼곡한 이파리들을 그늘의 아비라 믿은 적 있다
자드락비가 다녀가고,
아비는 제 몸에다
개칠(改漆)에 개칠을 더 해 눈부신 여름을 예비했지만
나무 아래엔
그늘을 덮고 누운 햇살의 발가락들 꼼지락거린다

 

이파리를 빼 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댄다

 

저 맹렬이면
광장을 들어 하늘에 띄울 수도 있겠다
맹렬을 심장이 내는 발톱이나 이빨, 때론 그윽한 눈빛으로 쓰는
한낮의 이파리가
흠씬 땀을 흘렸을까 나무 아래 서니
소금 냄새가 난다 그늘에 드리운 자그맣고 서늘한 염전이다

그늘을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몸부림 치는 오후 두시
느티나무 아래엔 아직도 그늘이 모자란다
매미가 제 소리의 그늘까지 내려 깔고 있다

 

 

 

                                 -  2018. 제 17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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