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준 마음 한철

생게사부르 2019. 6. 23. 15:08

 

마음 한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 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       * 

 

 

동백이 나오는 것 보니 봄인 것 같은데

어느 도시(공간)을 찾게 되는 것

여러 계기가 있을 텐데...

시인들은 시의 소재로 접했을 때, 그 시의 분위기를 더 잘 알기 위해

그 곳에 가서 그 시인의 심정을 거의 비슷하게 느껴 보고 싶은 생각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백석 시인

그 추운지방에 살던 사람이 남쪽 바닷가 다도해를 찾게되는 배경은

통영 아가씨 '란' 과의 인연이었다

창원을 지나고, 통영을 찾은 얘기가 몇 편의 시로 남아 있으니...서정시를 쓰는 사람

백석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통영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준 시인의 시에도 통영이 간혹 등장한다

 

'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

 

우리에게도 있었다

가족이든 이성이든 사랑을 해 본 사람

그 누구에게든

 

 

 

 

 

사진: 통영 연화도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끝 등대 2/ 박준  (0) 2019.06.26
지금은 우리가/ 박준  (0) 2019.06.24
박정인 그늘의 공학  (0) 2019.06.22
때/ 휘민  (0) 2019.06.21
이상적인 관객/ 휘민  (0)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