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항상성 김정진

생게사부르 2019. 6. 14. 23:57

항(상)성/ 김정진


 

여기서 잠시 불을 붙였다 갑시다

여름을 빨리 불러오고 싶었어요 하지(夏至)의 높은 태양을
만원버스 안에서 같은 리듬으로 동시에
흔들리면서 서로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손이 녹을 수 있도록
몸이 따뜻해지도록
태울 것들을 좀 찾아 봅시다

종점은 처음인가봐요 당신에게서 반환점의 냄새가 나는데
한번 뒤돌아서 봐요 저 사람이 말하길
당신이 어제 앞에 앉았던 사람과 닮았다는데

잘 타는 것들
연기가 적게나고 불빛이 멀리까지 가는 것들
내 전임자는 이런 여유를 허락한 적이 없었죠 원심력처럼 창밖을 보세요
동지(冬至)의 가까운 저녁을
저기 물미역처럼 하늘거리는 플라타너스들

전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는 잘 지냅니다 덕분에

잘 지내지 못해요

모닥불은 처음인가봐요 어두웠다 밝아지는 건
주변의 습도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가스가 많으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다시 점점 멀어진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그냥 나오는 사람처럼
여러번 집었다 놓은 믿음은 어디쯤일까요

영생하는 사람은 늙지 않을까요 언제부터
소년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망원경을 들어 기점을 찾아보세요

점차로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게 보일 겁니다 


                                      

                  - 계간 시산맥 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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