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2019. 경향, 조선 신춘 당선 시

생게사부르 2019. 1. 5. 09:41

2019. 경향, 조선 신춘 당선 시


경향신문


너무 작은 숫자/ 성다영


도로에 커다란 돌 하나가 있다 이 풍경은 낯설다 도로에 돌 무더기가 있다 이 풍경은 이해된다

그린벨트로 묶인 산속을 걷는다
끝으로 도달하며 계속해서 갈라지는 나뭇가지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다 예외가 있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공학자가 계산기를 두드
린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합니다 너무 작은 숫자에 더 작은 숫자를 더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은 비유다

망할 것이다

한여름 껴안고 걸어가는 연인을 본다 정말 사랑하나봐 네가 말했고 나는 그들이 불행해 보인다는 말 대신 정말
덥겠다 이제 그만 더웠으면 좋겠어 여기까지 말하면 너는 웃지

그런 예측은 쉽다
다영씨가 웃는다
역사는 뇌사상태에 빠진 몸과 닮았다

나무 컵 받침이 컵에 달라붙고 중력이 컵 받침을 떼어낸다

물이 끈적인다 컵의 겉면을 따라 물방울이 아래로 모이는 동안 사람과 사물은 조금씩 낡아간다

조용한 공간에 금이 생긴다

되돌릴 수 없다


조선일보


당신의 당신/ 문혜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 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 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 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들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 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

떠 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 당신, 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 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도 이해 받을수 없나 봅니다

 

 

 

*    올해 신춘 문예 수상자들을 보면

 

 

 

20대 중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작가

자신의 진로를 ' 시인' 혹은 최소한 문인으로 정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 딛는 통과의례로

당선된 사람들이 있다

위 ' 너무 작은 숫자' 성다영씨나  문혜윤 씨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 할 것이다.

간단한 약력으로 쉽게 판단 할 수는 없지만

제도권의 틀이 자신의 진로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굳이 '학문의 길'을 깊이 팔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고 사실 특별한 자격증이 있지 않은 詩作은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시인도 먹고 살아야하기에 논술학원 운영이나 강의를 하려면 학력과 자격증은 필수조건이

된다. 우리나라 처럼 학벌이 높은 나라가 많지 않음을 감안 하더라도

박사 시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

 

성다영의 경우는 제도권 학벌과 관련없이 시창작에 전념하는 듯하고

아래 문혜연 씨 같은 경우는 석, 박사 공부를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든 교사든 정규 직업을 가지면 생활은 안정될 것이지만 자기 창작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면이 있고

반면 전직시인은 자유롭게 창작에 몰입할 수 있지만 왠만한 시인으로 글만 써

살아가기에는 꾸리는 일상이 빠듯할 듯

 

두번 째 경우는 30-40 대 나이 구분 없이 가정주부나 다른 일을 하면서 꾸준히 글쓰기를 해 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은퇴등 사회생활 일부를 끝내면서 생업에 묻혀 펼쳐 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

 

전국의 시창작실이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지자체 평생교육센터나 문화원 등에서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일 것이다

 

신춘문예 수상자 선정 과정을 읽을 때마다 ' 이렇게 시 공부 하는 사람이 많다니' 하고 한번 놀라고,

당선시들을 보면서 '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니' 하고 또 놀란다

 

많이 읽고 많이 써서 시의 내공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지만...

다수 독자에게 공감 받고 시 전문가들에게 인정 받는 시인이 되기란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문혜연 시는 김형경  ' 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소설제목에 익숙해서 

친근미를 획득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