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신발 베고 자는 사람

생게사부르 2018. 2. 19. 19:50

 

신발 베고 자는 사람 / 유홍준


 

아직 짓고 있는 집이다

신축공사현장이다
점심 먹고 돌아 온 인부들 제각각 흩어져 낮잠 잘 준비를 한

누구는 스티로폼을 깔고 누구는 합판을 깔고 누구는 맨바

닥에 누워

짧고 달콤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갈 준비를 한다

신발 포개 베고 자는 사람은 신발 냄새를 맡는다

옷을 둘둘 말아 베고 자는 사람은 웃옷 냄새를 맡는다

딱딱한 각목 동가리를 베고 자는 사람은

딱딱한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찌그러지든 말든

상관 없는

신발 두짝을 포개 베고 자는 사람은 생각한다

버려야할 것과 새로 사야할 것들 이제는 다 옛일이 되어버

린 것들을 생각한다

(사실은 아무 생각도 안한다)

아직 문짝이 끼워지지 않은 집은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것은 막히지 않았다는 거다

세상 모든 집은 완공되기 전에 인부들이 먼저 잠을 자본 집

이다

 

 

 

'세상 모든 집은 완공되기 전에 인부들이 먼저/ 잠을 자 본 집이다' 딴은 그렇기도 하겠다.

집이 다 지어지기 전 인부들은 아직 문짝도 끼워지지 않은 집의 거친 바닥에서 점심 식사 후의 단잠을 즐겼을 것이다.

합판을 깔고 구두를 베고서도 고대광실의 침대 못지않게 달콤한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등만 대면 잠이 올 정도로 고단한 노동이 최고의 수면을 보장한다.

이런 순간에는 신발 두 짝이라도 그럴 듯한 베개가 될 수 있다.

아직 문짝이 끼워지지 않은 집은 막힌 곳 없이 시원하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시원한 휴식처가 되어준다.

집이 완성되어가며 문짝이 끼워지고 단단히 닫히면 그곳은 점점 내밀하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방마다 주인이 생기고 정갈한 침구가 자리 잡을 것이다.

그곳에서 신발을 베고 자던 인부들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집은 기억할까? 문짝이 끼워지기 전 막힘없이 시원하던 구석구석에서 낮잠 자던 인부들의 혼곤한 꿈을.

 

이혜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