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북천, 무당

생게사부르 2017. 11. 7. 00:47

유홍준


북천
   - 무당


작두는 녹이 슬고
이파리 없는 대나무 가지는 흔들리지 않고
복사꽃 피는 북천 개울가에
폐허가 된 집이 있다
무당이 살던 집이다
쪽 찐 여자가 살던 집이다
일년에 딱 한번
그 외딴 집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복사꽃이
물들이는데
누군가 하나는 꼭 홀려 그 외딴집으로 간다
꽹과리며 징이며
소리나던 방울은 바닥에 버려져 있고
녹아 내리던 촛농은 녹아내리던 채로 멈춰
십년을 버티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똑 같이 흉내 내던 사람이었다
반말을 쓰던 사람이었다
대접 속에 든 물을
솔가지 잎으로 찍어 뿌리던 사람이었다
마침내 복숭아나무 속으로 들어가 복숭아나무가 된
사람이었다
사람을 데려가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