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춘수- 부재,서풍부 김동리-세월

생게사부르 2016. 1. 3. 22:55

부재(不在) /김춘수

 

어쩌타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나팔 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 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세월 / 김동리

 

세월 가는 것 아까워
아무일도 못한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또는
사랑을 하기에도 아깝다
책을 읽거나
말을 건네기에도 아깝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을 맞기에는
더욱 아깝다
아까워 세월은
아무것에도 쓸 수 없다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앉아서 똑 바로 지켜나 볼수 밖에

 

 

서풍부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왼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올려놓고 복사꽃을

올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듯

눈물인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