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 /김춘수
어쩌타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나팔 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 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세월 / 김동리
세월 가는 것 아까워
아무일도 못한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또는
사랑을 하기에도 아깝다
책을 읽거나
말을 건네기에도 아깝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을 맞기에는
더욱 아깝다
아까워 세월은
아무것에도 쓸 수 없다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앉아서 똑 바로 지켜나 볼수 밖에
서풍부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왼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올려놓고 복사꽃을
올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듯
눈물인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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