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상
반가사유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 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 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2014.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 *
단순하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간절한 체험과 만날 때 시적 깊이와 직관이 생겨 공감대를 자아낸다
위 시는 화자의 개입없이 시적 대상인 ' 반가사유상'의 외연과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이 시에서 < 반가 사유상>의 외적 속성은 ' 고정된 자세, '철로된 몸',' 녹이 슨 상태'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외적 형상이 가진 속성을 바탕으로 내적 속성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 녹이 슨 상태인데도 아직도 저 안에 부처가 있을까?'
' 그가 만약 떠났다면 남겨진 형상은 무슨 의미일까?
' 자세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답을 찾듯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야 한다
아마도 그는'면벽하는 자세만 남기고 떠났다' 라는 사유가 답으로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시를 쓸 차례다.
구체적인 겉의 속성은 꼭 필요한 것만 묘사한다.
그런 후 이면에 담겨 있는 속성을 아주 천천히 섬세하게 시적 진술을 통해 던져 놓으면 된다.
그런 방식에 의해 이 시의 압권에 해당하는
"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란 구절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담긴 시적 사유는 간결하지만 울림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무소유가 갖는 자유로움과 광활함이 이 구절 하나에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
" 한 자세로/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 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 닿는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라고 한 구절 또한 백미이다
...무소유의 절정은 무소유를 깨달았다는 생각마저 지우는 것이기에,
' 어디 가 닿는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 하린의 ' 시클' 고요아침
제13장 ' 내 시엔 깊이가 없대요 깊이를 넣을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 중에서
산문인지 시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시들이 많은데 역시 시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속에서
그 맛을 다할 때 시 본연의 묘미가 있다.
아래 사진은 최근 일부 복원되고 녹슨 때를 벗긴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인데 그런 활동이 역사학이나 고고학
문화인류학이 하는 역할이라면 시인은 녹이 슬었으면 슨대로 위 같은 시를 뽑아 내는 일
그것이 시인의 일상이자 살아가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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